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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 다섯 개.

by 단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느낌표 다섯 개에 대해 생각했어. 오늘 만난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내가 그들을 부를 때 항상 뒤에 느낌표 다섯 개가 붙는대. "언니!!!!! 오빠!!!!!"이렇게. 그 말이 너무 웃기고 어이없어서 자꾸자꾸 생각이 났어. 그런데 또 부정할 수 없는 거야. 정말 그런 것 같거든. 내가 생각해도 그냥 언니, 오빠보다는 꼭 뒤에 느낌표 다섯 개를 붙여서 부르는 것 같거든. 알바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같이 일하는 언니인 걸 발견하면 나는 아주아주 크게 언니!!!!라고 불러. 보통 '언'에 힘을 줘서 부른대. 그러니까 언! 니!!!!!인거지. 그러면 대체로 언니들은 시크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항상 언니!!!!!라고 느낌표 다섯 개를 붙여. 언니가 너무 반가우니까. 옆에서 자꾸만 쫑알대고 싶고, 장난치고 싶으니까. 오빠들을 부를 때는 보통 도움이 필요할 때야. 내가 고객들의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없을 때, 나의 능력 밖의 일을 팀장님이 시키실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오빠!!!!!라고 부르지. 그러면 나의 소란스러운 부름과는 상반되게 조용하게 나타나서 깔끔하게 일을 해결하고 다시 사라져. 그럼 나는 고마움을 한껏 담아 쌍 따봉을 날려주지. 능숙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쳐 왔을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어. 그 많은 시간을 지나치며 배운 것들을 나는 그냥 느낌표 다섯 개로 잠시 빌리는 거야. 그러니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에 느낌표가 자꾸자꾸 늘어나는 건지도 몰라.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이들을 부를 때 느낌표 다섯 개를 붙여서 불렀어. 반가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득 담아서. 그중에서도 반가움이 제일 컸어. 나의 힘듦과 고됨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오늘의 치열함과 정신없음을 알아줄 사람들. 그래서일까 나는 이들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 자꾸만 응원하게 돼. 그래서 주제넘은 충고를 하기도 했어. 나의 행복을 기준 삼아 이들에게 막 들이밀었어. 이렇게 해야 행복해져! 이런 건 하면 안 돼! 너의 행복을 바란다는 말을 방패 삼아 상처를 준 거야. 진짜 행복을 바란다면 섣부른 충고보다는 묵묵한 응원이 더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거야. 나는 응원도 뭐가 이렇게 요란스러운 건지. 나는 드러내지 않고 응원만 남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텐데 말이야. 이 자리를 빌려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반가움은 느낌표 다섯 개로, 응원은 온점 다섯 개로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진짜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지내! 다음에 또 만나~~~" 라고 인사하고는 집으로 나섰어. 사실 아르바이트라는 게 그렇잖아. 매일 보다가 누구라도 여기를 그만두면 이제는 가끔 보다가, 영영 못 보는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하잖아. 이런 짧은 만남과 헤어짐은 삶에서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니까. 살면 살수록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생각하다가도 익숙해지는 게 과연 좋은 건가, 라는 생각을 해. 모든 헤어짐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건 슬픈 일일까 기쁜 일일까?

그런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좋은 거 있지. 늦은 밤에, 사람은 드문드문 보이고, 거리는 고요하고, 귀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길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조금만 더 걷고 싶었어. 마음에 느낌표 다섯 개와 온점 다섯 개와 쉼표 다섯 개를 지닌 채로 느낌표를 꺼냈다가, 온점을 꺼냈다가, 쉼표를 꺼냈다가 했어.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오늘 나누었던 기쁨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날들에 대한 생각들이 한데 모여서 슬프고도 행복한 기분이었어.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각자의 길을 가고 그 길에서 넘어지기도 다시 일어나기도 하겠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눈 찰나의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너무 많은 것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나눈 응원과 마음도 그렇게 잊힐까 봐 조금 슬프기도 했어.

있잖아, 그래도 나는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 시간이 흘러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일상이었던 시간이 훗날 아 그랬었지 하고 가끔 회상하는 시간이 된다고 해도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고. 아주 찰나의 시간이지만 아주 따듯한 시간이었다고. 앞으로 우리가 지나갈 수많은 찰나가 이렇게 따듯하기만 하다면 나는 기꺼이 수많은 찰나를 마주할 거야. 오늘도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원밖에 없어. 이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달라진 게 있다면 응원하는 마음들이 더 늘어났다는 거겠지. 느낌표 다섯 개가 아니라 온점 다섯 개로 응원할게. 요란스럽지 않고 눈에 띄지 않아서 안 보일 수 있지만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줘. 언제든 만나면 느낌표 다섯 개로 인사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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