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안녕, 지금은 글쓰기 수업 시간이야. 무엇이든 써 내야 하는데 뭘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멍때리다가 네 생각이 났어. 나는 어제 글을 써버렸거든. 다시 글을 쓰려면 이야기가 쌓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아직 나에게는 쌓인 이야기가 없어. 그래서 네 이름을 빌려 글을 쓰려고 해.
편지글인데 변명이 너무 길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저번에 네가 보내준 학교 사진 덕에 학교의 안부는 잘 전달받았어. 이제 곧 종강이네. 내년이면 우리 4학년이야. 뭐 그래봤자 아직 23살이지만. 나는 요즘 출판을 준비하고 있어. 독립출판을 할지 기획출판을 할지, 제목은 무엇이 좋을지, 목차는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아. 물론 지금은 고민만 하고 있어. 휴학이 끝나기 전에 내 이름을 건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요즘은 책을 만드는 일과 우리의 인생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책을 내는 건 굉장히 의미 있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딱히 큰 의미는 없거든. 너무나도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니까. 그 책들 속에서 나의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 삶도 가끔 그렇잖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거나 아무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잖아. 그럼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나의 글과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청춘은 너무 무거워.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이 있잖아.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청춘. 수많은 선택지는 가끔 나를 버겁게 만들어. 하지만 그래서 신나기도 하지. 자유로운 동시에 무거운 게 청춘인가 봐. 나는 요즘 지금이 내가 가장 예쁠 때라는 생각을 많이 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라는 것도 알아. 내 눈에도 나의 청춘이 빛나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어떻겠어. 만나는 어른마다 나를 보면 아이고 예뻐라, 라고 말해. 진짜 예쁜 걸 보는 눈으로. 반짝이지만 조금은 슬퍼 보이는 눈으로. 나는 나의 청춘을 자각하면 기쁜 동시에 조금은 무서워져. 이 청춘도 언젠가는 끝날 테니까. 나도 반짝이는 청춘을 보며 참 예쁘다, 라고 말할때가 올 테니까. 그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대화 속에 등장했던 그런 이기적인 아줌마만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어른들은 자기들도 어리고 반짝였던 청춘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고, 우리들은 우리도 언젠가 약하고 고집 센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아. 시간 안에서 결국 우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세상이 이토록 어지럽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나의 청춘을 다 보내버릴 수는 없으니 이제 일어나서 조금 걸어야겠어. 고민하다, 반짝이다, 슬퍼하다, 웃다가 우리의 청춘이 지나가겠지. 하지만 청춘이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것처럼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거야. 이야기가 쌓이고 글을 쓰고 책을 낼 거야. 한 시절이 가고 또 새로운 한 시절이 온다는 건 어쩌면 희망일지도 모르겠어. 청춘의 한복판에서 너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기뻐. 우리 또 만나자.
2023년 12월 13일. 사랑을 담아 예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