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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힐 이야기.

by 단어

저 멀리서 양갈래를 하고 뛰어오는 하하가 보인다. 파란색 비니에 파란색 후드집업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하하. 우리는 신나서 라볶이 집으로 들어간다. 오늘 간 곳은 '디델리'. 고등학교 때 하하와 종종 갔던 곳인데 아주 오랜만에 이곳에 들린다. 디델리는 내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한 자리를 지켜온 서면의 몇 안 되는 가게이다. 분명 저녁시간에는 사람이 북적북적했는데 오늘은 아줌마들 한 팀이 구석자리에 앉아있고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주문도 키오스크로 받는 디델리. 우리는 라볶이+치킨 그라탕 세트와 튀김을 시킨다. 앉아서는 새로 한 네일에 대해 떠든다. 하하의 손톱은 새로 받은 크리스마스 헬로키티 장식으로 아주 아기자기하다. 나 한번, 네일한번. 나 한번, 네일 한번. 네일을 보고 배시시 웃고, 나를 보고는 푸하하 웃는다. 우리가 네일에 대해서,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침내 음식이 나온다. 직사각형의 트레이를 가득 채운 라볶이와 그라탕과 튀김의 형태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우리는 사진을 얼른 찍고는 숟가락을 든다.


튀김 중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는 길고 먹음직한 새우튀김이 눈에 들어온다. 김말이, 치킨 너겟, 스마일 튀김 등등 모두 두 개씩인데 유일하게 새우튀김만 하나다. 하나는 먹기 애매하다. 분명 둘 다 손을 대지 않다가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고, 결국에는 둘 다 배가 불러 저 튀김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별 고민 없이 하하에게 말한다.

"새우튀김 너 먹어!"

그럼 하하는 라볶이를 입에서 우물우물 거리며 묻는다.

"응? 왜? 너 안 먹어?"

나는 그라탕을 한입 떠먹으며 말한다.

"응. 나는 하하 사랑하니까."

나의 무심하고도 진솔한 고백을 들은 하하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헐 나 엄청 사랑하나 본데~?"

"그럼, 넘치게 사랑하지!"

그제야 하하는 새우튀김을 짚는다. 그마저도 나에게 한 입 주고 난 뒤에 먹는다. 나는 새우튀김 하나 양보하고 하하를 넘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하하는 나의 넘치는 사랑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며 그저 받는다. 사랑은 좋은 거니까. 나는 내가 입 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생각한다. 아, 내가 하하를 사랑하는구나.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언제나 맛있는 부위를 내미는 것, 나의 필요를 나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것, 언제나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나누는 것, 하나 있는 새우튀김을 양보하는 것. 저 멀리 있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바로 내 눈앞의 것을 선뜻 내미는 것도 사랑이니까. 미래의 100만 원보다 현재의 10만 원이 더 아까운 게 사람이니까. 그 10만 원을 준다는 건 지금 당장 10만 원어치의 행복할 기회를 너에게 준다는 거니까.


디델리를 나온 우리는 탕후루를 먹으러 간다. 하하와 있으면 탕후루를 자주 먹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 하하와 먹는 탕후루는 더 맛있다. 하하가 너무너무 맛있어하기 때문이다. 얇고 반들반들한 설탕이 코팅된 딸기를 입에 넣은 하하는 눈이 커지고, 콧구멍도 커진다. 그러면 귤을 입에 넣고 있는 나의 눈과 콧구멍도 덩달아 커진다. 우리는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12월의 서면 거리를 걷는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크리스마스에는 무엇을 할지 어떻게 보낼지 벌써부터 신나 하며 걷는다. 하하와 함께 할 때는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하에게는 현재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탕후루의 달달함을 느끼며, 신나 하는 하하의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오만 원짜리 네일과 삼천 원짜리 탕후루에 이토록 행복해하는 하하에게 딱 그 정도의 시련만 오기를. 하하의 삶에는 오만 원만큼의 아픔과 삼천 원만큼의 상실만 있기를. 이 이야기는 끝나도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기에. 계속되는 삶 속에서 언젠가는 잊히고 말 오늘의 이야기를 나는 적어 내려간다. 오늘의 이야기를 나도 잊고 하하도 잊겠지만 그 행복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사랑할 때 느껴지는 기쁨과 행복은 잊히지 않고 내내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 그렇게 언젠가 잊힐 이야기는 언젠가 우리를 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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