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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by 단어

나는 너희를 언제부터 친애하게 되었을까. 친애하는, 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후로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희를 친애하게 되었다. 학술제를 며칠 앞두고 나는 학술제 문집 맨 뒤에 실릴 소감문을 쓴다. 작년 임원들이 쓴 소감문을 한 번씩 쭈욱 읽어보고, 아 이런 흐름으로 쓰면 되는 거구나 익히고 난 뒤 노트북에 손을 올린다. 소감문도 글이라고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맙고 고마운 선배들, 다시 돌아가라면 자신 없지만 지나지 않았더라면 아쉬웠을 순간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이 정도면 되었나 하고 다시 읽어보다가 중요한 사람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해준 친구들.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앞에서 썼으니 다른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나는 친애하는, 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친애하는 친구들. 친밀히 사랑하는 친구들.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카톡을 보낸다.
"나 학교 도착하면 놀아줄 사람~?~?"
휴학을 한 뒤로 오랜만에 들어가는 카톡방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에게서 답장이 온다.
"나 세시에 마쳐!"
"나는 두시!"
"나는 한시!!"

그제야 나는 긴장을 풀고 너희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린다. 너는 여전히 콜라를 좋아할지, 너는 오늘도 멋있는 옷을 입고 왔을지, 너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고 또렷할지, 너의 미소는 여전히 강아지 같이 밝고 귀여울지, 너의 씩씩함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똑같을지, 너의 다정함은 오늘도 유효할지, 너는 요즘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지, 오늘의 너는 여전히 놀리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을지, 너의 세심하고도 따듯한 마음을 시크함 속에 숨기고 있을지, 곁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너의 하루도 편안했는지, 너의 엉뚱함과 귀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서울역에 내려 능숙하게 정류장을 찾아서 익숙한 번호의 버스를 탄다. 더 이상 헤매지 않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란다. 작년에는 그렇게도 쓸쓸하게 느껴지던 종로가 오늘은 왜 이리 다정하게 느껴지는 걸까. 매일 들었던 정류장의 이름들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신이 난다. 학교 정문에서 내리자 저 멀리서 내게로 뛰어오고 있는 너희가 보인다.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서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로 오는 너희들. 보고 싶던 얼굴들. 돌아왔다는 기분이 든다. 순간 나는 헛웃음을 짓게 된다. 돌아왔다니.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다니. 매일 부산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나였는데 어째서 서울에서, 서울 한복판의 종로에서, 종로에 있는 학교에서 나는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가.


사실 나는 이 정도로 너희가 보고 싶지 않았는데. 집에서 편안하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너희를 마주하자마자 나는 너희가 매우 그리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무 반가워서 자꾸 신이 난다. 너희와 함께하는 내가 아주 마음에 든다. 너희는 작은 나를 더 작게 만든다. 그리고 작아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게 만든다. 너희는 나의 작음을 사랑해 준다. 그러면 나도 나의 작음을 더 사랑하게 된다. 친구들 속에서 나는 작아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고 마음껏 웃어도 괜찮고 마음껏 울어도 괜찮은 내가 된다. 더 괜찮은 내가 된다. 내가 돌아온 곳은 서울이 아니라 너희들이었던 것이다. 제법 괜찮은 내가 될 수 있는 너희들에게로 나는 돌아온 것이다.

너희는 그간 괜찮았는지 묻고 싶었다. 여전한 너희를 보며, 여전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동시에 깎기기도 했을 너희를 보며 나는 애틋함을 느낀다. 여전히 다정하고 환하게 웃기 위해서 지나왔을 시간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본다. 그 시간을 지나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게 더없이 즐겁다. 함께할 수 있는 것만큼 큰 기적은 없다는걸, 우리의 무수한 선택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너희의 선택이 더없이 고마워진다. 그 고마움에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좋은 사람이 되어 너희에게 더 좋은 순간들을 선사해 주고 싶다. 내가 느낀 기쁨을 너희도 느꼈으면 한다. 그럼 더 살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그래도 다시 한번!" 이라고 외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친애하는 친구들일 수 있을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은 우리. 아직은 어린 우리. 살다 보면 우리는 친애하는 친구들이 되었다가,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가, 그냥 친구가 될 것이다. 슬프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희를 응원한다. 지금 너희를 사랑한다. 마음 다해 응원하고 마음 다해 사랑한다. 너희 삶에 앞으로 친애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는 세상에서 너무 외롭지 않기를.


친애하는 친구들. 이라는 말 속에 숨겨 놨던 소중한 이름들을 이제서야 한 명씩 나열해 본다. 그 짧은 소감문에서 자기들을 발견하고 기뻐하던 너희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본다. 너희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너희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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