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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

by 단어

여기 세명의 친구가 있다. 하하, 랄라, 진진. 이들은 아주 가지각색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 하나 없다. 하하는 밝고 명량하며 목소리가 크다. 언제 어디서든지 크게 웃고 크게 말한다. 하하와 함께하는 이들은 처음에는 하하의 웃음소리에 놀라다가도 어느새 그 웃음에 매료된다. 하하는 계속계속 듣고 싶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갖고 있다. 랄라는 따듯하지만 강단 있고 뿌리가 깊은 친구다. 랄라를 스치고 간 그 어떤 바람도 랄라의 깊은 뿌리를 헤치지 못했다. 랄라에게 스치는 바람이 세면 셀수록 랄라는 더 깊고 따듯한 사람이 되어간다. 우리는 모두 랄라가 내어주는 빛을 받으며 커왔다. 진진은 밝고 털털한 면모와 아주 세심한 면모를 모두 가진 친구다. 하하와 함께일 때는 하하처럼 크게 웃고, 랄라와 함께일 때는 랄라의 잔잔하고도 울림 있는 목소리를 잠자코 들어준다. 또한 그 사이에서 진진만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다. 하하, 랄라, 진진은 서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큰 소리에 귀를 막으며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간다.


오늘은 하하가 밥을 사는 날이다. 평소에 랄라와 진진에게 받은 게 많다며 하하는 이들을 맛있는 파스타 집에 데리고 간다. 사실 랄라와 진진은 정확하게 모른다. 자신들이 하하에게 무엇을 줬는지. 하하가 왜 밥을 사는지. 그들이 내어준 마음을 그들은 모른 채로 파스타를 먹는다. 파스타를 먹던 중 하하가 말한다.

"어우 이 파스타 좀 짜지 않아?"

랄라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괜찮아! 떠먹는 피자랑 같이 먹으면 완전 단짠단짠이야!"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진진에게 파스타의 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앞에 앉아있는 하하와 랄라의 대화가 그저 즐거울 뿐이다. 무엇보다 진진의 입에는 다 맛있다.

밥을 다 먹고 나온 랄라와 진진은 하하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다음에는 비싸고 고급진 스테이크를 사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하하는 툴툴거리면서도 이들의 장난이 싫지 않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이들이 좋다.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다음을 기약하는 이들이 왜인지 가족 같다고 느껴진다.


하하, 랄라, 진진은 나란히 걷는다.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하면서 걷는다. 세 친구는 먼저 진진의 집에 들러 하하에게 빌려줄 재킷을 챙긴다. 다음 주에 하하에게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셋은 나란히 앉는다. 버스정류장 의자의 '엉뜨'에 감탄하며 노래를 부른다. 랄라가 노래를 부르면 하하는 대충 음만 흥얼거리고 진진은 또 그저 웃는다. 하하의 집에서 랄라와 진진은 가방을 고른다. 하하 삼촌의 친구분이 가방회사에 다니시는 탓에 하하의 집에는 예쁘고 반짝거리는 가방이 많다. 각각 두, 세 개씩 마음에 드는 가방을 손에 쥐고서 랄라의 집으로 향한다. 랄라의 집에서는 '셀프 속눈썹 펌'시술이 이루어진다. 기술자는 하하다. 진진은 깨끗이 세수를 하고 랄라의 침대에 누워 자신의 속눈썹을 하하의 손에 맡긴다. 하하는 눈에 붙인 테이프가 불편하지 않냐며 자꾸만 물어보지만 진진은 몰려오는 졸음 탓에 불편함을 느낄 새가 없다. 꾸벅꾸벅 졸며 생각한다. 여기에는 내 것이 하나도 없구나! 랄라의 침대에 누워서, 내 손이 아닌 하하의 손으로 진진의 속눈썹은 치켜올려진다. 내 것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도 이토록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탄하며 진진은 잠에 빠져든다.


닮은 구석 하나 없는 이들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이들 조차도 잘 모른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왜 하하는 밥을 사주고 진진은 하하에게 재킷을 빌려주며 랄라의 집에서 속눈썹을 치켜올리는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네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네가 더 잘 자기를 바라는 마음, 네가 더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 무엇보다 네가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이 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지금의 세 친구를 만들었다. 세 사람은 씩씩하게 살아갈 힘과 두려움 없는 마음을 주고받는다. 끝끝내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마음들이 여기저기 떠 다닌다. 아마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것이다. 그 사랑을 생색 낼 생각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사랑을 주는 일이 곧 받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간 진진은 새롭게 태어난 속눈썹을 엄마에게 자랑한다. 이 속눈썹으로 살아갈 새로운 날들을 기대한다. 하하에게 카톡이 온다. 진진보다 더 길고 잘 올라간 랄라의 속눈썹 사진이다. 진진은 랄라의 속눈썹이 오래오래 위를 보고 있기를, 언젠가는 하하의 속눈썹도 자신이 올려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늦은 잠을 청한다. 세 친구는 깊고도 단 잠을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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