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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것들

by 단어

오후 두 시 반이 되면 우리는 크고 작은 수다들을 끝내고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신발장에 놓여있는 수많은 신발 중 내 신을 찾아 신고, 본당으로 내려간다. 나는 부산 본가 교회에서 오후 예배 찬양팀을 하고 있다. 피아노도 드럼도 기타도 무엇하나 다룰 줄 모르는 나는 찬양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싱어'다. 누구나 설 수 있고 누구나 맡을 수 있는 역할이지만 나는 내 역할이 좋다. 피아노와 드럼과 기타와 리더의 소리를 제일 잘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 자리에서는 피아노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피아노 치는 그들의 얼굴은 아주 숭고하다. 입을 꾹 다물고,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는 동시에 모든 악기의 박자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박자의 느림과 피아노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다는 점 또한 바로 알아차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노래의 음이 너무 높아서 부르기 힘들 때는 바로바로 키를 낮춰서 연주하고, 리더가 원하는 바를 그대로 구현시킨다. 피아노와 드럼과 기타와 리더의 진두지휘가 어우러진 전주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소름이 돋는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너무 신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광경을 나는 우리 교회 찬양팀에서 목격한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노래만 부르면 된다. 기타가 배경을 만들어 주고 피아노가 색을 더해주고 드럼이 속도를 조절해 주는 동안 나는 그저 느끼면서, 그들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노래만 부르면 된다. 목소리라도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들이 만들어 주는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내가 휴학하고 부산에 온 것도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서울에 있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아름다움을. 이들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아름다움을.


동시에 생각한다. 내가 두고 온 것들에 대해서. 이 아름다움은 내가 그곳을 떠나왔기에 목격할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떠나가는 일은 나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두고 오게 만든다. 이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없다. 떠나간다면, 두고 오는 것들이 반드시 생긴다. 나는 그곳에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을 두고 왔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을 시간을 두고 왔고, 어쩌면 만날 수 있었을 새로운 인연들을 두고 왔고, 좋아했던 밤 산책길을 두고 왔고, 가을이면 낙엽이 무성했던 풍경들을 두고 왔고, 존경하는 작가님의 공간을 두고 왔고, 내가 울고 웃었던 서점을 두고 왔다. 두고 온 것들이 수없이 많아 여기에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이 많은 것들을 두고서 여기에 왔다. 그리고 여기에 있다.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며 아쉬워한다. 아 거기 있었으면 나도 너희와 함께였을 텐데. 너희와 함께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공기를 마시며 장난을 쳤을 텐데. 지금쯤 그 카페의 낙엽은 얼마나 노래졌을까. 그 식당은 여전히 사람이 많을까.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좋았을까.


많고 많은 삶중에 내가 살 수 있는 삶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떠나면서도 두고 오지 않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것과 저것 중에서, 이 사람과 저 사람 중에서, 이곳과 저곳 중에서. 선택했다면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프다. 자주 아프다.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대부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장담하거나 확신할 수 없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고 우연한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우리는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가 남겨진 사람이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설렘과 두고 온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 사이를 오고 간다. 그렇게 삶이 계속된다.

삶이 계속된다는 건 떠나가는 일과 남겨지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시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되는 삶이 좋다. 떠나간 채로 끝나지도 않고 남겨진 채로 끝나지도 않는 삶이 좋다. 삶이 계속되는 이상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두고 온 아름다움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 어느새 두고 온 것과 새롭게 마주한 것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어디서 무엇을 떠나왔는지 모른 채, 무엇을 두고 왔는지 모른 채로 삶이 계속된다. 나는 그저 우리가 그 사이에서 덜 슬프기를 바란다. 두고 온 것들은 다음을 기약하는 아쉬움으로,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아쉬움으로 우리에게 남기를 바란다. 그 힘으로 또 새로운 아름다움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 수 있었을 삶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를 지나간다. 마주한 것들과 두고 온 것들이 나를 지나간다.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나는 또 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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