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안녕. 다들 잘 지내? 이제 날씨가 선선하다 못해 추워지고 있는데 너희들의 10월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너희가 보고 싶은 마음에 노트북을 켰어. 역시 그리움은 글을 쓰게 하는 것 같아. 나는 잘 지내. 정말로 잘 지내.
최근에는 새로운 글쓰기 수업에 갔어. 거기에는 30대 선생님과 40대 선생님과 60대의 선생님이 있어. 사실 선생님은 한 분이지만 워낙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서 나는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 22살의 나는 당연히 막내야. 처음 나를 소개하는 날 선생님들은 나를 부럽다는 눈빛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셨어.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작가와 최근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는데 60대의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야.
"20대의 글은 그냥 막 써도 좋지. 새롭고 참신하잖아! 뭘 써도 톡톡 튀고 말이야. 나이가 들수록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만 쓰게 돼. 그래서 나도 20대 작가가 좋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어.
"나이가 들수록 쓸 이야기도 많아지지 않나요? 선생님은 쓸거리가 많으시잖아요!"
20대의 나는 가끔 글 쓰는 게 부끄러워질 때가 있거든. 내 글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치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그래서 나이를 먹는 만큼 글글도 익어갈거라 생각했는데. 또 마냥 그렇지만은 않나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 나이가 들수록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만 쓰게 되는 건 이제는 다 알아버려서 그런 것 아닐까? 사람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다 알아버린 거지. 다 알고 나면 쓸 필요가 없어지니까. 글쓰기는 궁금증에서 시작되기도 하니까. 사실 내 글의 대부분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거나, 질문 같은 답으로 끝나. 나는 아직 모르는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살고 싶은 것도 많기에 글쓰기를 멈출 수 없나 봐.
20대의 나는 요즘 질문으로 가득해.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내가 옳은 건지 틀린 건지,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나중에 후회하는 게 아닐지. 나는 머릿속에 질문이 가득 떠오를 때마다 너희가 보고 싶어져. 너는 무슨 그런 고민을 하냐며 웃어넘길 거고, 너는 나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일 거고, 너는 그저 오래 듣고만 있겠지. 그런 너희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을 텐데. 질문을 멈추고 그냥 너희를 보면 다 해결되는 듯한 기분을 받을 텐데. 그래서 요즘은 너희의 이야기가 궁금해. 말하기도 좋지만 듣는 일도 좋으니까. 너희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어떨 때 외로운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오늘의 하루는 어땠는지, 기뻤는지 슬펐는지. 너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그 시간을 어떻게 흘려보내는지. 가끔 여유가 되면 들려줘. 나는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까. 꼭 기쁘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아. 그냥 너희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다 좋을 것 같아. 너희가 성실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나도 한번 성실하게 들어볼게. 내 글을 읽어주는 너희에게 항상 조금씩 빚지고 있다고 생각해.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예쁜 곳에 가서 예쁜 것들을 먹었어. 예쁜 걸 보면 와 예쁘다~라고 말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 헐 너무 맛있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네가 너무 좋아서 자꾸자꾸 좋다고 말했어.
"역시 너랑 있으니까 너무 행복하돠아~~"
"크크 나도 행복해~~너 부산에 있으니까 좋다. 그냥 자퇴해라!"
우리는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들을 나눠. 우리의 만남의 목적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때가 되면 만나. 계절이 변하면 만나고, 시험이 끝나면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만나고. 우리는 그냥 만나. 그리고 그냥 행복해해.
있지, 너희는 어떨 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산다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아? 유독 살고 싶어지는 순간. 내 숨이 너무너무 소중해지는 순간.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여기는 순간. 얼마 전에 슬아 작가님의 결혼 영상을 유튜브로 보게 됐어. 다 볼 생각이 없었는데 그 영상 속 인물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멈출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 영상에서 결혼식의 사회를 맡은 슬아작가님의 친구가 그러는 거야.
나는
너희를 보면
살고 싶어져.
나는 그냥 펑펑 울고 말았어. 나의 너희들이 떠올랐거든. 나를 살게 하는 얼굴들이 떠올랐거든. 나를 살게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라는 걸 알아버렸거든. 나는 너희의 기쁨과 슬픔을 마주할 때마다 더 살고 싶어져. 함께 웃고 울고 싶어져.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너희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펑펑 울었어.
나는 너희를 보면 살고 싶어져. 나를 살게 하는 너희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또 앞으로 너희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지도 궁금해. 그래서 너희가 되도록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세상이 아무리 너를 힘들게 하더라도 일단 살고 봤으면 좋겠어. 날이 좋으니 살고, 지는 노을이 예쁘니까 살고, 계절이 바뀌니까 살고, 시험이 끝났으니 살고. 그러다 시간이 나면 만나고, 만나서 행복해하고. 우리는 서로를 살게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몰라.
내 이야기도 너희를 살게 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어. 크고 작은 이유로 우리 살아보자. 이 이야기가 너에게 닿기를 바래. 크고 작은 사랑을 담아. 예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