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며칠을 보냈어.
이번에는 너를 만나자마자 가방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나는 분명 챙겨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가방이 내 품에 없는 거야. 너는 아휴 정말 하고 한숨을 쉬고는 금세 가방을 두고 온 곳으로 달려갔어. 나는 당연히 거기 있겠거니 생각하며 크게 당황하지도 않았어. 가방 안에는 나의 에어팟, 틴트 두 개, 립밤, 그리고 주민등록증까지 들어있었어. 없으면 내 일상에 지장을 주는 것들이었지. 숙소로 돌아가 가방을 한 번 더 찾아보는데 너에게 전화가 왔어.
“가방 없대!! 분실물 보관함도 뒤져보고, 그 자리도 가봤는데 없어...누가 가져간 것 같은데???“
그런데 웃긴 건 나는 가방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저 덤덤한 거야.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에어팟도 새로 살 때 됐고, 틴트도 얼마 안 하는 거야! 가방은 새거라서 좀 아깝긴 한데.... 괜찮아~~”
괜찮은 척 한 게 아니라 나는 정말로 괜찮았어. 오히려 내 옆의 네가 더 안절부절못하는 거 있지. 제발 정신 차리고 다니라고 만나자마자 잃어버리면 어떡하냐고 내가 다 챙겨주는데 가방 정도는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참을 이어지는 잔소리에 나는 그냥 너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기만 했어. 속상해 죽겠다는 말투와 찡그리는 눈과 크게 벌렸다가 오므려지는 입과 그 모든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바쁜 얼굴의 근육들까지. 속상하다는 표정을 하나로 정의해야 한다면 딱 이 표정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 가방과 에어팟과 틴트와 립밤은 다시 사면 되는 거잖아. 돈은 좀 들겠지만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거잖아. 너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닐까? 너는 한번 잃어버리면 돈을 줘도 다시 살 수 없으니까. 나는 그저 내 옆에 있는 네가 좋아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말 한마디로 잊어버린 지 오래였어. 지금 다시 생각하니 조금 속상하기는 해. 하지만 뭐 어떡하겠어? 속상해한다고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방은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나는 아직 내 손에 남아있는 것들을 더 아끼는 수 밖에.
너와 함께하는 꿈같은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게 하나 있었어. 지금이 새해라는 사실과 저번 주에 한 개의 글도 쓰지 못했다는 것. 이 두 개가 나의 마음을 내내 무겁게 했어. 새해에는 미뤄왔던 것들을 하고 싶었거든.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고, 게을러서 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더 좋은 글이 쓰고 싶었어. 조금 더 솔직한 글. 조금 더 담백한 글. 조금 더 재밌는 글. 그리고 조금 더 많이 읽히는 글.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움직이게도 하지만 나를 멈춰 세우기도 해. 너를 만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지! 라고 마음 먹었는데 그날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는 거야. 너를 만나고 돌아가서는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고, 더 좋은 글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었어. 너를 만나고 나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나인 거지.
내 옆에서 자는 너를 보며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글과 앞으로 쓸 글, 희망과 사랑과 용기를 말하는 책과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해 생각했어. 꿈과 힘과 책과 벽 사이를 자꾸만 왔다 갔다 하는 나. 꿈과 벽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크고, 그 속에서 힘을 잃었다가 얻었다가 하는 나. 그리고 여전히 내 옆에 있는 너. 그 사이를 오고 가며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 될까? 결국에 남는 건 책일까 벽일까?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 깨끗하게 씻고는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얻었다가 잃어버렸다가 해. 가끔은 크게 속상할 테고 가끔은 오늘처럼 덤덤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아무리 많은 걸 잃어버려도 꿈은 잃고 싶지 않아. 결국에 남는 건 꿈, 책, 사랑, 희망 같은 것들이었으면 좋겠어. 너는 언제까지나 내 옆에서 내가 꿈을 잃어버리려 할 때 정신 차리라고,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어떡하냐고 말해주면 좋겠어. 나의 이야기에 아무리 많은 것들이 담기더라도 끝끝내 남는 건 그런 무용한 것들일 거야.
꿈 같은 일이 언젠가 나의 일상이 될 때까지, 열심히 오늘을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