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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Dec 15. 2023

2박 3일간의 악몽을 기록한다

 그날은 일기예보에서 비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비가 오면 패닉에 빠지는 몽이 때문에 나는 습관처럼 5분마다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했다. 점심때가 지나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천둥소리가 나자 영락없이 내 품으로 파고들더니 발톱을 세우고 팔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사시는데 동생이 내게 챙겨주라고 한 택배가 도착했다며 집에  들르라는 이야기였다. 방금 뽀송이를 산책시키고 들어와서 샤워까지 하고 난 후인 데다 몽이의 불안도 시작되는 참이라 내일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의 망설임을 눈치챈 엄마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붕어빵 사 온 것도 있으니까 가져다 먹어."


 내가 붕어빵이나 고구마 같은 걸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의 식탐은 없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게 먹을 걸 핑계 대며 오라고 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다. 나는 붕어빵이랑 동생이 보냈다는 물건을 가져오려면 몽이를 집에 두고 빨리 차를 몰고 다녀오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팔에 매달리는 몽이를 얼른 떼어내고 마당으로 나가서 차를 몰았다.


 그건 고작 10분에서 15분 정도였다. 엄마에게 동생이 전하는 이야기랑 물건을 받아 들고 붕어빵  하나를 꺼내서 맛있게 먹는 모습도 보여드렸다.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일어나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거실 창가에 놓여 있는 세라젬 위에 올라앉아서 내가 오는지 내다보고 있어야 할 아이가 안 보였다. 닫혀있는 현관문을 보며 마음이 급한 몽이가 현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없었다. 몽이를 부르며 차근차근 1층부터 거실, 방, 욕실을 뒤지고 2층으로 올라가며 이제서야 덜컥 겁이 났다. 설혹 무서워서 층에 올라갔더라도 이쯤되면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다그닥 소리가 들려야 했다. 역시 어디에도 없었다.


 집 주변을 뛰어다니며 소리쳐 이름을 불렀다. 예전에 딱  한 번 비 오는 밤 늦게 퇴근했다가 집 밖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 적이 있다. 현관문이 늦게 닫히는데 나는 서두르느라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 문틈으로 비집고 나온 아이는 닫힌 문을 다시 열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몽이는 2kg 밖에 나가지 않는다. 누운 아이의 배에 손바닥을 올리면 그 작은 가슴과 배가 가려지는 그 정도로 작은 몸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전주인의 손에 성대가 잘린 몽이는 나를 뒤 따라 나오며 분명 나를 향해 짖었겠지만 마음이 급한 내 귀에는 닿지 못했을 것이다. 그 소리는 조용한 방에 둘이 있을 때 공기의 떨림으로 전달이 되곤 했다. 자기가 아무리 짖어도 돌아보지 않는 엄마를 향해 온몸으로 뛰어오르며 짖는 그 몸짓으로 전달되는 떨림이다. 나는 내 바로 옆 풀숲에 몽이가 쓰러져 있어도 찾지 못할 수 있다. 그건 공포였다. 그 작은 아이가 어딘가에 쓰러져서 분명 내가 보이는데 나를 향해 짖는데 내가 그저 지나쳐 가버린다면.


 차를 가지고 엄마 집으로 난 길을 다시 되짚어 봤다. 엄마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외길이고 동네에서도 마지막 길이다. 우리 집 위에는 산뿐이라서 이렇게 비 오는 날 올 사람이 없다. 혹시나 사고라도 당했다면 그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깨끗했다. 나는 다시 차를 마당에 두고 집 주변을 뒤졌다. 우비를 입고 몇 시간을 계속 헤맸다. 비가 계속 내렸다. 뽀송이를 데리고 빗길에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13살이나 먹은 아이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그래도 모르니까. 비가 와서 또 패닉에 빠졌다면 천지분간 못하고 무작정 길을 따라 내려가진 않았을까? 깔끔 떠느라 길 옆 풀숲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는 아이지만 천둥이 치니까 또는 차가 지나가니까 그리로 피하진 않았을까?


 그날 밤 나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기다렸다. 비를 머금은 찬바람이 계속 거실로 거실에서 방으로 훑어지나 갔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아침도 먹었다. 어제부터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집 주변부터 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올라와서 집 주변 도랑이나 작은 틈까지 하나하나 같이 보셨다. 한참을 뒤지고 나서 이 정도로 흔적이 없으면 들짐승에게 물려간 거 같다고 하셨다. 그만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담담하게 엄마를 올려 보내고 나는 집 앞 개울가를 뒤졌다. 이젠 울음이 터졌다. 전쟁통에 자식 손을 놓친 엄마처럼 나는 목놓아 울며 풀숲을 손으로 훑었다. 아무리 불러도 몽이는 대답이 없었다.


 중간중간 일에 관련된 전화가 왔고 나는 무섭도록 멀쩡하게 전화를 받고 일처리를 했다. 저녁에는 세종에 들렀다가 금산까지 가서 집안 행사를 하나 치렀다. 화장을 곱게 했고 행사장에서는 잘 웃고 잘 먹었다. 밤이 늦었지만 나는 남편을 금산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몽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어둔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뽀송이가 짖어댔다. 아침 산책 갈 시간이라고. 나는 다시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뒷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제도 가봤지만 만약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그 넓은 산에서 몽이를 발견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가봐야 했다. 어제부터 솔개의 발톱에 잡혀가는 몽이가 환영처럼 보였다. 들개에게 목이 물려 죽거나 오소리에게 공격당했을 지도 모른다. 늙은 개는 도망칠 힘이 없다. 나는 뽀송이를 풀어놓은 채 휘적휘적 산을 올랐다.


 보통 산을 오르면 나는 작은 오솔길을 헤치며 가고 뽀송이는 양 옆의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그날은 그 텀이 좀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얘가 어디 있나 양 옆을 올려다봤다. 저 위에서 뽀송이가 나를 보고 짖고 무언가 허연 덩어리를 맴돌았다. 나는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서 핸드폰 사진기를 켜고 10배로 줌을 당겼다. 몽이였다. 몽이가 나를 보며 동상처럼 서 있고 뽀송이는 몽이의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당황해서 목이 메어 부르는 내 쪽을 보며 몽이는 계속 그냥 돌처럼 서 있었다. 길도 없는 비탈을 기어올라가 품에 안을 때까지 몽이는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내 품 안에서 떨고 있는 이 작은 몸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굶고 긴장하고 먹지 못한 아이는 자꾸 허방을 짚었지만 놀라서 뛰어온 내 엄마에게 또 성깔을 부렸다. 원래 까칠하고  이기적인 성격은 그대로였다. 그 성질머리를 보고 가족들은 차라리 안심했다. 그래도 따뜻한 물에 씻기고 배 부르게 먹이고 잠을 한숨 재운 아이는 갑자기 오론쪽 뒷다리가 뻣뻣해지며 쓰러졌다. 쥐가 난 다리를 주물러 풀어주고 다시 재웠다. 그 후에 몽이는 나이를 먹으며 줄었던 식욕이 다시 5년은 젊어졌는지 더 잘 먹고 더 열심히 코를 곯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로 했다. 몽이가 오래오래 살기를 빌지도 않는다. 딱 하나. 내  품에서 죽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그저 내가 자리를 비웠더라도 자기한테 익숙한 우리 집, 자기가 좋아하던 이불 위에서 죽기만 하면 된다. 그거 하나면 된다.


 몽이를 찾은 날 저녁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 셀을 밟았다. 좌회전 신호가 떨어졌는데 내가 넋 놓고 있어서 뒤에서 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고 생각했다. 내 뒤에는 차가 없었고 신호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피해 차량은 특장차였고 차주는 내려서 내 얼굴을 보더니 자기 차에 아무 흠집도 없으니 가서 내 차나 고치라고 했다.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하고 보험처리를 하고 차를 공업사에 맡기고 대차를 했다. 그리고 3일 만에 나는 주차된 차를 또 긁었다. 분명히 삐삐 거리는 경고 소리가 났지만 나는 차가 있는 쪽을 보지 않고 후진을 했다. 공업사에 전화를 하고 다시 또 보험사에 전화를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불안해서 숨이 차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틀째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잠만 자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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