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느 겨울이었을까? 하늘이는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몇몇 장면은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해. 그날은 온 세상이 하얗게 반짝거렸어.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문을 빼꼼히 열어보면 공중에 둥둥 떠있는 눈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리게 내렸어. 한 낮이었지만 엄마와 하늘이는 두꺼운 겨울 이불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어. 요즘은 한 겨울에도 폭신하고 가벼운 이불이 유행이지만 그때는 무거울 정도로 솜을 꼭꼭 쟁여서 만든 두꺼운 이불을 덮었거든. 추운 겨울에 부엌에서 엄마 손에 붙들려 목욕을 당하고 나면 부리나케 그 이불속에 뛰어들어가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한참을 꼼짝 안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나. 그래야 사람 몸에서 나온 열기로 이불속이 천천히 덥혀지니까. 조그만 몸으로 만들고 있는 이 온기가 빠져나갈까 또는 방안을 떠도는 한기가 이불 새로 기어들어올까 싶어서 아이들도 꼼지락 거리지 않고 누워 한참을 기다렸지. 그 무거운 이불은 왠지 조금 마음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 언제나 저 하늘 너머만 바라보는 아이가 혹시나 잠결에 쑥 빠져나와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이불은 아이의 몸을 방바닥에 꼭 눌러놓았어.
그래도 그날은 하늘이에게 이불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던 거 같아. 엄마가 같이 있었거든. 아직 어린 엄마는 눈 오는 겨울 아직 어린 하늘이를 옆에 끼고 카세트테이프를 틀었어. 어떤 여자 가수가 부르는 유행가를 한 소절씩 틀었다가 노트에 가사를 빠르게 적고 다시 테이프를 돌려서 들어보며 그 가사가 맞는지 확인했어. 그렇게 듣고 쓰고 다시 확인하며 한 소절씩 한 소절씩 받아 적으며 그날 오후를 다 보냈던 거 같아. 하늘이는 그 노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세상이 온통 반짝였다고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