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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Oct 12. 2023

그스막골엔 13살 늙은 개가 살아요

 우리가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이에요. 몽이가 3살 반일 때. 새끼를 뽑는 개농장에서 어미견으로 살던 몽이는 2kg 밖에 안 나가는 작은 몰티즈랍니다. 성대가 잘려서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온몸으로 짖으며 의사표현을 해요. 몰티즈답게 적당히 도도하고 적당히 까칠하고 적당히 이기적이죠. 그전에 키우던 푸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트라우마가 있던 저는 아파트 현관문에서부터 근처 공원 안 산책로에 도착할 때까지 몽이를 안고 다녔어요. 무서워서 찻길 옆에서는 인도에서도 내려놓지를 못해 어화둥둥 키웠고 몽이는 더 버릇이 없어져버렸죠. 우리 부부는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예쁜 거뿐이구나. 그래 그러면 됐지 뭐. 예쁘면 다야.”


 몽이도 어린 시절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사회성 제로의 강아지인데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부서질세라 업어 키우는 주인을 만났으니 더욱 엄마 껌딱지가 됐죠.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지 다른 강아지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니 둘째를 들여 낮동안의 외로움을 달래 볼까 하는 고민도 그만두었고요. 그렇게 7년을 함께 살고 우리는 함께 그스막골로 들어왔어요. 시골 단독주택에 살면 자유롭게 마당에도 나가고 몽이의 생활도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집으로 들어오면 차라고는 우리 부부가 들고 나는 게 전부니 저의 불안도 사라지고 몽이는 마당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엔 외국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현관문에 작은 문을 만들어서 들고 날 수 있게 할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했는데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말았죠. 아무리 마당이 생겼어도 차가 잘 다니지 않는 한적 한 산책길이 생겼어도 몽이는 제 반경 1,2m를 넘어 다니지를 않으니 현관에 별도의 문을 만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소리를 내지 못하는 조그만 강아지는 혼자 나갔다 작은 수렁에라도 잘 못 빠지면 제가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고요. 그래도 현관만 나서면 온통 신기한 자연이 펼쳐지니 저희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3년, 몽이는 이제 열세 살이나 되었어요. 여전히 제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열렬히 반겨주지만 그렇게 1분을 격렬하게 환영인사를 하고 나면 곧바로 제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코를 골죠. 제가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으면 저를 놓칠세라 후다닥 따라 나왔다가 5분 정도 지나면 사라진답니다. 처음엔 얘가 어디로 사라졌나 혼비백산해서 구석구석 찾아 헤맸는데 글쎄 마당이 보이는 거실 창가 옆 안마기에 올라가서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거기가 지정석이에요. 햇빛도 잘 들고 마당도 한눈에 보여서 굳이 찬바람 쐬지 않아도 제가 들어오는지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리는지 작은 새가 창가 앞을 날아가는지 다 감시할 수 있거든요. 거기서 졸다가 구경도 하다가 인사도 없이 집을 지은 때까치에겐 혼구녕도 내주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물론 창밖의 작은 새는 몽이의 엄한 꾸짖음을 들을 리가 없지만 기세등등하게 안마기 위에서 격렬한 경고를 보내고 저를 향해 의기양양한 눈길을 주면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럽다는 시늉을 해준답니다.


 이렇게 집순이면 우리가 시골에 들어온 보람이 없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빈 거실만 바라보던 아파트보다 사시사철 흥미진진한 자연을 보여주는 창가를 독차지하고 늙어갈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개의 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지만 너의 노년을 그스막골의 한 귀퉁이에서 보낼 수 있어서 나는 이미 감사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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