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쇠 대신 번호키로 여는 사회는 정말 살기 좋은가요?
미국에 살 때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미국도 문에 비밀번호키를 달았으면 좋겠어. 왜 아직도 열쇠로 문을 여는거야? 여기와서 한국이 진짜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걸 느낀다니까." 당시 나는 그 말을 듣고 별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나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열쇠를 챙기고, 집에 다다르면 가방에서 열쇠를 찾는 그 행위가 꽤나 재밌고 흥미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오랜만에 내가 다니던 대학가에 방문하게 될 일이 있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방문할 때마다 내가 잘 알면서도 잘 모르는 곳이 되어있곤 했다. 군데군데 내가 방문하던 가게가 남아있기도 했지만, 대로변에 있는 수많은 가게가 쉼없이 문을 닫고 새로 연 탓에 나마저도 그 거리가 생경하고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재개발 아파트 촌이다. 구글맵이나 네이버맵에서 로드뷰를 보면 이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는 높은 건물이 없이 낮은 주택가로만 형성되어 있던 동네에 지금은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으며, 내가 이 동네로 이사오고 나서도 끊임없이 수 많은 용지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자주 가던 식당이나 약국이 있었던 건물이 허물어지고 그 위에 높은 오피스텔이 계속해서 들어서며 매년 동네 풍경이 바뀐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기분이 있었다. 오랜동안 의식하지 못했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조차 명명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계속해서 느꼈다. 그리고 그걸 목수정 작가님의 <시끄러울수록 풍요로워진다>라는 책을 읽으며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남들이 100년을 살려고 아파트를 지을 때, 우린 30년만 살고 부술 아파트를 지으라는 신호를 국가가 내린 것이다. (...) 우리에게 진정 더 이상의 택지 개발이 필요한가? 왜 한국의 아파트는 100년을 가도록 지을 수 없는가? (...) 지난 세대의 삶이 현재의 삶과 함께 진화할 수 없도록, 불도저로 주기적으로 밀어버리는 사회. (...) 뿌리 뽑힌 삶은 역사가 전하는 지혜를 흡수할 수도, 정주하여 내 후세의 삶까지를 설계하는 사치를 꿈꿀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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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혀서다. 튼튼히 뿌리내린 식물은 자신을 성장시킨 세월 속의 지혜를 뿌리에 저장한다. (...) 우린 자의로 타의로 그 뿌리를 제거당하며 살아왔다. 의지할 데가 별로 없다. (...) 강박적인 고속 성장에 몰입하면서, 차 떼고 포 떼고, 더 빨리, 더 높이 달릴 수 있는 방법을 향해서만 스스로를 최적화시켜 온 결과다. 뿌리 같은 걸 지니고 살아봐야 거추장스러울 뿐. 우린 그것을 싹둑 자르는 일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 목수정, <시끄러울수록 풍요로워진다>
나는 여전히 손목시계를 착용한다. 여전히 종이책을 읽고, 영상 시청을 위한 아이패드는 있지만 애플 펜슬은 없기에 필기가 필요하면 종이에 펜으로 적는다. 20살 이후로 1년엔 한번씩 최근 1년의 추억 중 가장 남겨두고 싶은 사진을 선정하여 인화하고, 그 사진들을 사진 앨범에 모아두고 있다. 5G가 아닌 LTE 쓰기를 고수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넷플릭스를 같이 볼 친구를 구한 다음에 넷플릭스를 처음으로 구독했다. 이미 모든 이가 브이로그나 유튜버에 익숙해진 다음에서야 팬데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무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선 이어폰으로 버텼고, 여전히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나 또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성장과 진화를 좋아한다. 한국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했기에 내가 누리는 이점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인지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어느 수준까지는 편리함을 충족하기 위한 변화였으나 이미 나는 충분히 편리한데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존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사회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또 동시에 그 새로운 것이 정말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였다, 일부러 이 나라의 속도에 맞추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도심에서도 과거의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그들의 모습이었다. 파리 도심의 아파트들, 런던의 회백색 건물들, 두브로브니크의 주황색 지붕의 주택들... 모두 각자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그들만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한때 그 건물에 살았을 50년 전, 100년 전 사람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은 그들과 달리 약탈과 수탈의 역사가 있기에 과거의 건물을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잃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삼국시대나 조선 시대의 건물에서 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전이 아니더라도 종종 8, 90년대의 한국의 모습을 볼 때면 그 때만의 청취가 그리워지곤 한다. 그 때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내부만 조금씩 손질해가며 우리만의 색을 지켜나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더 좋은 기계로, 기술로, 집으로, 동네로 그렇게 내가 매일 더 나은 지점으로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삶에 만족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오래된 것, 낡은 것은 포기할 줄 아는 게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빠르게 달려나가는 사회에서 최대한 열심히 뒤를 돌아보며 살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계속 그 자리에서 뿌리 내리며 나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싶다. 내 키가 자랄 때마다 표시해둔 벽은 없지만 내가 큰 마음먹고 애정을 가지고 산 가구를 고치고 닦으면서 내 공간에서 추억을 쌓고 싶고, 동네 곳곳에서 단골 손님과 사장으로 인사하며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를 쌓고 싶다. 끊임없는 알람으로 나를 괴롭히는 워치 대신 매일 나의 착장에 맞는 손목 시계를 골라 차는 재미를 계속해서 느끼고 싶고 종이책을 넘기는 재미나 종이에 사각사각 글자가 써지는 소리도 잃고 싶지 않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에서 혼자서만 천천히 달리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내 아집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 내가 나이 들어서 '라떼는~'을 반복하거나 과거의 영광만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꼰대 어른이 되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 모두는 조금 천천히 걸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천천히 걸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달리느라 놓쳤던 것들을 하나씩 되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놓친 것은 추억일수도, 지식일수도, 문화일수도, 또 사람일수도 있다. 그렇게 놓친 것들을 더 이상은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은 사회의 빠른 변화를 곧잘 받아들일 수 있는 청년층이다. 그러나 내가 중년이나 노년층이 되었을 때, 청년과의 대화가 극명하게 단절되거나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민폐 고객이 되기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있고, 그들에게 내가 나눠주고 또 내가 나눔 받을 수 있는 지식과 문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아이와 청년, 중년과 노년이 단절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줌으로써 때로 우리에게 닥치는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사회의 중년이나 노인이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손목 시계를 차고, 종이책을 읽고, 펜을 든다. 오늘 또 쓰러진 건물과 문 닫은 가게 앞에서 아쉬워 한다. 오늘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우리는 조금 천천히 달릴 필요가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