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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Apr 06. 2024

내가 내가 아닌 순간

힘듦은 꼭 나눠야 하나요?

연애를 할 때 가장 힘든 순간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힘들고 지치는 순간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싶어했던 연인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답할 것 같다. 아마 이 문장을 듣는 많은 이들이 '그게 연인이 하는 일이 아닌가?' 혹은 '그렇다면 연애를 왜 하는거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저 말을 하면 모두가 내게 던지는 질문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전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대충 연인의 존재라는 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는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애는 자신에 대해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던가? 몇 번의 연애 끝에 나는 나에 대한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힘든 순간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공유는 가까울수록 더더욱 어려워진다. 친구보다 연인에게 이런 순간을 더 공유하지 않고, 거기에 더 나아가 가족에게는 더더욱 내보이지 않는다.


내가 힘든 순간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연애를 통해 깨달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태어나 가장 깊은 관계를 맺어 온 우리 가족은 힘든 순간을 서로에게 잘 공유하지 않는 가족이었다. 여기에 속하는 힘듦은 여러가지가 있다. 감정적 우울일 때도 있고, 인생이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일이 너무 바쁘거나 해야하는 공부의 압박감이 너무 심한 모든 부정적인 순간이 포함된다. 그런 순간 나의 가족 구성원들은 일단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각자의 동굴에 들어가버리는데, 보통 다른 구성원들은 그 시간을 그저 모른 척 해줄 뿐,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그가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부터는 열과 성을 다해 들어주고 도움을 준다. 그런 나였으니, 오히려 내게는 힘든 순간 동굴에 들어간 나 때문에 서운해하거나 그 동굴의 문을 열고자 하는 연인에게 외려 당황했거니와 나의 세계를 침범한다는 느낌에 조금의 불쾌감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힘들 때 방문을 걸어잠그는 이유는 단순하다. 힘든 순간에는 나는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그런 나를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가지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힘든 순간에는 평소에는 기분 나쁘지 않았을 말에도 화를 내고, 예민해진다. 그렇게 행동하는 내가 평소의 나답지 않다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고 나조차도 그런 내 마음과 행동에 당황스러운데도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런 내 모습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 그러니 조절이 힘든 나는 그냥 그런 내 모습을 숨겨버리면 들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있다면 그에게 예민해지거나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써야하기 때문에 거기에 소비되는 에너지조차 버거운 것도 이유가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힘든 원인을 핵심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그저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해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도 있다. 보통 내가 사람을 찾아 수다를 떨거나 내 이야기를 터놓는 경우는 힘들 때가 아니라 불안할 때다. 불안의 경우는 타인에게 말을 하면서 내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고, 타인의 위로와 의견을 들으며 확신이 되는 반면, 그저 힘든 순간에는 우울이 지나가거나 인생이 잘 풀리도록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일이나 시험을 끝내버리는 것 외에는 단순히 이야기를 공유한다고 괜찮아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보통 그런 이야기는 핵심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나서, "내가 그때 이런 일이 있어서 힘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 해결하여 괜찮다."라고 추후에 공유하는 편이었다.


사실 이런 성격 탓에 친구나 연인들에게 서운하다는 피드백을 왕왕 받아왔던터라, 나름대로 공유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여전히 쉽지 않다. 나는 이번주에도 일이 바빠 지친 마음을 숨기려 이 날씨 좋은 봄날에 주말 내내 집에서 혼자 문을 걸어잠그는 쪽을 선택하였다. 내가 나답지 않은 나를 풀어놓아도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누구도 배려할 필요 없이 있고 싶은 모습대로 있으면서 나는 나의 힘든 시간을 또 견뎌내어가고 있다. 그런 나를 걱정해주어서 고맙고, 그런 내게 서운해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나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아주기를. 그러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또 당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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