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ley Mar 10. 2024

나를 울리는 '하트 피버 타임'

꼭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이여야 하나요?

오랜만에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2'를 재주행했다. 개인적으로 갓세븐 진영의 팬이며, 웹툰 내에서도 '구웅' 캐릭터보다 '유바비'를 더 좋아했던 나는 '유미의 세포들1'보다는 '유미의 세포들2'를 더 좋아한다. 이 드라마는 처음에 tv로 방영이 되지 않고, 티빙에서만 금요일 이른 오후에 한편씩 공개되곤 했는데 내가 이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 회사는 금요일에는 단축 근무로 4시반 퇴근인데 이 시간은 6시에 퇴근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만나기도 애매할 뿐더러 보통 운동 등 개인적인 일정이 많아 평일에는 약속을 잘 잡지 않는 나와 내 친구들의 성격 탓에 나에겐 한동안 4시반에 퇴근하여 매주 집에서 혼술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유미의 세포들이 방영하면서 나는 12주동안 금요일마다 루틴처럼 낮술과 함께 (여름이여서 그 시간에도 해가 지지 않았다) 유미의 세포들을 보며 웃고 울었더랬다.


나는 어릴 때에도 책을 좋아했지만 만화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성격이 이어져 지금도 소설은 즐겨보지만 웹툰은 즐겨보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종이 만화책을 즐겨보지 않던 어린 시절에도 인터넷 소설책을 즐겨보던 나였으니, 나는 그림보다는 글자를 따라가며 스토리를 읽는게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살면서 본 웹툰은 딱 두개이다. '치즈 인더 트랩'과 '유미의 세포들'. 치즈 인더 트랩은 고3 때 수능을 보고 인생에서 가장 할 일이 없던 시절, 너무 심심하던 차에 한창 재밌다고 유명했던 웹툰이라 보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를 좋아하게 된 이유나 계기에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크게 감명받지는 못했었다. 아마 수능이 끝난 고3이 아니었다면 보다가 중도하차를 했을 것 같다. 


유미의 세포들은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계기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내 주변에서 유미의 세포들의 아이디어를 찬양하는 친구들이 한두명이 있어서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이 내 몸의 살아 움직이는 각 세포의 행동과 생각이라는 아이디어가 획기적이라는 의견이 다분했다) 언젠가 온라인에서 '유바비'라는 캐릭터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다수 보이기 시작하면서 궁금해져 웹툰을 정주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미의 세포들 웹툰을 정주행하고 나의 소감은 '나쁘지 않은 웹툰'정도였다. 또한 우리 몸의 세포를 그런 식으로 풀어낸 것이 획기적이라는 의견에 동의했으나 개인적으로 '그래서 그냥 여자 주인공인 김유미의 사랑 연대기네?', '결국 사랑과 연애 타령하는 흔한 로맨스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같다.


그런 내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던 건 단순히 세포 마을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가 궁금해서였고, 예상보다 세포 마을을 잘 영상화한 덕에 그 재미로 드라마를 계속 시청했었다. 스토리 자체가 지루하진 않았던 웹툰이었기에 별 실망이나 기대 없이 시즌1 드라마를 무방하게 시청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대로 진영의 팬이였고, 유바비라는 캐릭터를 좋아했기에 시즌2 드라마도 킬링 타임으로 생각하고 시청을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렇게 울게 될 줄도 모르고... 


드라마가 완결되고 나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단순히 사랑과 연애 타령을 하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웹툰을 보는 당시에는 유미가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로 성공하는 스토리가 그저 유미의 인생 연대기를 설명하기에 클리셰 적으로 나오는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유미의 삶에 들고 나는 연인들로 인해 유미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그래서 종래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에 대한 드라마였으며, 그와 동시에 유미의 연인들마저 한 때 그들의 인생에 속해있었던 유미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드라마는 내게 우리는 연인으로 인해서도 무언가를 깨닫거나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 변화는 작은 습관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인생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연인이란 그저 인생에 사랑 타령만을 위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이 있는데 두 번째로 그 장면을 볼 때에는 울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내게 울림을 주었다. 그 장면을 위해서 잠깐 드라마의 설정과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먼저 각 개인에게는 세포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는 여러 세포가 있다. 이성 세포, 감성 세포, 사랑 세포와 같이 기본적인 세포부터 식욕을 책임지는 출출이 세포, 불안 세포, 패션 세포, 명탐정 세포, 자린고비 세포, 응큼 세포들이 각자에게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이 세포들 중 가장 메인이 되고 힘이 센 '프라임 세포'가 다른데, 이는 그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인생에서 연애와 사랑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절의 유미에게 프라임 세포는 사랑 세포였고, 이후 작가로서의 일이 연애를 역전하자 이후에는 작가 세포가 프라임 세포가 된다. 웅이의 경우, 자존심 세포가 프라임 세포로 사랑 세포가 솔직하고 싶은 순간에도 자존심이 구겨질 것 같으면 자존심 세포가 막아서는 캐릭터였다. 시즌1에서 특히 큰 힘을 쓴건 유미의 사랑 세포였다. 프라임 세포답게 사랑 세포가 구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둘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그 연애가 순탄할 때도, 삐걱댈 때도 언제나 주인공은 사랑 세포였다. 그리고 이별할 때까지. 그러나 이별이란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에 유미와 웅의 이별 이후 그 때 받은 충격으로 사랑 세포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 연애 세포 다 죽었다~'라는 것처럼.


유미의 사랑 세포가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 '유바비'라는 남자가 유미의 삶에 성큼 들어온다. 바비와 유미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며 사랑 세포를 제외한 세포들이 바비를 좋아하는 '바비 소모임'의 회원이 된다. 혼수 상태에 빠진 사랑 세포와 유미는 아직 연애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성 세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세포들이 바비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바비에게 고백까지 받지만 프라임 세포인 사랑 세포가 아직 바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니 유미도 좋아한다고 인정하고 연애를 시작할 순 없었다. 그렇게 썸도 아닌 뜨뜻미진근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사랑 세포가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긴 하지만 여전히 사랑 세포는 바비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지 못해 바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성 세포를 필두로 한 바비 소모임 회원 세포들은 사랑 세포를 상대로 바비를 받아들이라며 시위를 한다. 아무리 많은 바비 소모임 회원 세포들이 바비를 받아들였다 한들, 프라임 세포이자 사랑 세포가 바비를 받아들여야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며, 사랑이 시작되어야 연애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여전히 유미의 사랑 세포가 주저하자 참고 참던 감성 세포가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는 웹툰과 드라마 설정 '하트 피버 타임'이라고 나오며 사랑이가 없어도 사랑하게 만드는 감성 세포의 울트라 파워를 발휘하게 하는데, 유미는 파워로 넓은 공원에서 바비를 찾아내어 결국 고백까지 하는 용기를 낸다. 나는 드라마에서 '하트 피버 타임'이 시작되는 순간 언제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대단히 감동적이거나 마음이 아픈 순간이 아닌데도, 이상하게도 장면에서 언제나 어떤 위로를 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었다.


나는 특히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의 연애관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편인데 보통 내 연애관을 설명했을 때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라던가, '그런 게 연애가 맞아?'라는 같은 말을 꽤 듣는 편이었기에 내 연애관이 보편적인 가치관과는 다르다는 피해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항상 모든 이가 그렇게 반응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때로는 공감해주는 지인들도 있었는데 난 왜 이렇게까지 연애관에 관해서는 이렇게까지 피해의식에 젖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쩌면 내 피해의식은 내 주변 지인의 영향이 아닌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보이던 전형적인 한국의 로맨스 미디어에 대한 반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에 어딘가에는 꼭 나의 'meant to be(운명이 될 사람)'가 존재하며 인생은 그런 인연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다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각종 시련과 고난에 더 단단해져 결국은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여정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는 그런 스토리가 싫었다.


흔히 연애를 시작하는 여자들의 마음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는 특히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항상 내 마음에 확신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가끔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그렇게 기다리게 하다가는 상대방이 먼저 지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걱정을 비쳐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그런 말을 들으면 확신은 없으나 그들과 함께 있는 즐거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시작한 연애에서도 언제나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거였다. 나는 여전히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기는 하나 이 마음이 사랑인지는 모르겠는 마음은 여전했고, 보통은 그런 내 태도에 지친 상대방이 도망가거나 내가 먼저 지쳐 포기하는 것이 언제나 내 연애의 끝이었다. 연인을 대하는 내 태도가 이성적이고 차가워 보였기 때문인지 지인들이 이별을 한 나를 걱정하는 경우는 잘 없었으며 대부분 나 대신 상대방을 걱정하곤 했더랬다. 뭐, 어느정도는 사실이었음을 인정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본 적이 없는만큼 헤어나오는 것이 크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연애와 이별을 반복할수록 내 마음 속에는 어떤 물음이 계속해서 커져 나갔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없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이.


그런 내게 사랑 세포가 프라임 세포로 인생의 중요도를 유미 자신보다 남자친구인 구웅을 1순위로 두는 '유미의 세포들1'은 당연히 큰 재미가 없었을 거다. 그러나 그런 구웅을 잃고 혼수 상태에 빠진 사랑 세포 없이도 다른 다수 세포들의 덕심(바비를 좋아하는 덕후 같은 세포들의 마음을 드라마에선 이렇게 표현한다)에 따라 연애를 시작하는 그 장면은 마치 내게 '이 세상에 어떤 연애는 사랑이 없이도 시작될 수 있다고, 꼭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꼭 사랑이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고, 그리고 내겐 그 의미가 큰 위로였다. 그리고 그 위로는 언제나 나를 울게 했다. 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안도의 울음을.


'유미의 세포들'은 좋은 웹툰이였고, 좋은 드라마다. 드라마를 시즌 1과 2로 나뉘어 방영을 했는데, 만약 두번째 시즌에서 마저 사랑 세포가 바비를 좋아하는 개연성을 보여주었다면 시즌 1와 2에서 남자 주인공만 바뀐 것 외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퇴사를 한 유미에게 한시적으로 자린고비 세포가 각종 예산안을 처리하는 세포가 되는 설정이나 자존심을 앞세워 진심을 말한 적 없던 웅이의 사랑 세포가 전여친인 유미를 잡고 싶어 자존심 세포를 외딴 곳에 가두고 진심을 전하러 가는 설정 등 유미의 하트 피버 타임 외에도 흥미롭고 획기적인 설정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많고, 그저 즐겁게 보기에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 그래서 유미와 바비는 그 이후로도 행복하게 살았느냐고? 이건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확인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매일 100점짜리로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