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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성 Feb 27. 2024

영화 <파묘> 리뷰

재미는 있지만...

<파묘> 인터내셔널 포스터




  LA의 부유한 의뢰인 박지용(김재철)은 장손들에게 대물림되는 병을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젊고 영험한 무당 화림(김고은)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한다. 화림과 화림의 신 제자 봉길(이도현)은 그들의 병증이 조상의 문제임을 진단하고 지용에게 묫자리 옮기기를 제안하는데, 그로 인해 이장을 위해 필요한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영근(유해진)이 팀에 합류한다. 거액의 금액을 통해 모인 그들은 이장을 위해 묘를 ‘파묘’ 하면서 기이한 사건들과 마주친다.


  영화 <파묘>는 이름 그대로 묘를 옮기기 위해서 파다가 일어나는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처럼 풀어나가는 오컬트 영화이다. 이 영화는 사랑받는 배우들의 캐스팅과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준 개성, 그리고 한국의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하는 오컬트 영화라는 점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 개봉했다. 오컬트 영화에서 무속 소재 사용은 양날의 칼과 같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소재임이 분명하지만 고증에 대한 부담과 통념 때문에 진부해질 수 있는 위험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파묘>는 글의 작성일인 26일을 기준으로 벌써 관객수 200만을 돌파했으니 이 영화가 소재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극복할 만큼 관객들을 매료시킬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의 전체적 감상평부터 말하자면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자신 있는 부분’이 잘 드러나는 영화이다. 앞선 영화들에서 감독이 보여줬던 미장센 기법과 의미를 창출하는 인서트, 개중 숨트기를 돕는 유머 섞인 대사가 이번에도 영화 전체를 ‘너무 무겁지는 않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장재현 식 오컬트 영화로 만든다. 다만 문제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챕터를 나누어서 스토리를 풀어나가려면 각각의 내용과 전체적인 개연성이 분명해야 하는데, 다루고 싶은 소재와 내용이 많다 보니 불필요하게 늘어진 상영시간과 정보 연결의 흐릿함이 결과적으로 영화 자체를 용두사미로 만들었다. 관람 이후 다수와 토론한 결과 다들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어 공통된 지적을 간추려 봤다. 


  먼저 최종 보스가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 오컬트 영화 장르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분명히 ‘가장 위험한 놈’이 제시되고, 관객이 그들의 등장에 긴장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대적하는 대상이 장군인지, 음양사인지 그도 아니면 한 나라의 과거인지 모호해진다. 게다가 개성 있는 직업의 네 명을 팀으로 다루다 보니 도리어 개개의 역할이 약화되었다. 오컬트 영화보다는 <극한직업>과 같은 가족 영화와 유사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챕터를 구분하는 대신 대적자 역할을 엮어 강한 존재로 구성하고 장르적 안정성을 위해 화림의 굿 장면 혹은 귀신과의 대적 장면을 조금 더 길게 잡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 같은 구성은 감독의 전작인 <검은사제들>을 연상하게 만들 테니 오히려 <파묘>의 시도가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개성으로 의미 깊을 수도 있겠다. 


  또한 영화 장르에도 불구하고 정작 공포 요소는 그때그때의 점프 스케어가 전부이다. 영화 중반까지는 오컬트 장르에 충실하지만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영화는 <영웅>이 된다. 앞서 말한 챕터 결합의 이유도 이 부분인데, 스토리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면서 기승전결의 결로 갈수록 공포심은 줄어들고 그렇다고 카타르시스도 붙잡지 못한 애매한 해결과 애국심으로 결론이 난다. 실로 기묘하다.


    물론 처음에 설명했듯이 이 영화가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팬층을 형성한 것은 영화 자체의 매력과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 차력쇼, 소재의 독특성(ex, 컨버스 신고 굿하는 MZ 무당)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고, 나름 재밌게 본 사람으로서 아쉬운 부분을 적는 것뿐이니 만약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냥 재밌으니까. 완성도 면에서 아쉽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이하 아래부터는 영화 관람 때 주목했던 철저히 개인적인 뷰포인트가 담겨있다.


  영화를 보다가 이번에도 흥미롭게 본 부분이 있어 적고자 한다. 상단에 적지 못한 이 영화의 또 다른 아쉬운 부분은 너무 예측하기 쉬운 것인데,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정재현 감독의 소재 사용이 뛰어났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원래부터 이러한 ‘미신’들에 관심이 너무 많았던 터라 컷 안의 집중된 사물만으로도 뒤의 내용들이 척척 예측이 되어 놀라는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벌써 인터넷에서 관찰되고 해석되는 요소들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주목한 일부만 쓰겠다. 


  먼저 영화 전반을 담당하는 거울, 물, 유리, 창문 등의 소재들은 이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과 관련되어 통념적으로 알려진 요소이다. 테이블 유리, 창문, 천장 등 LA 의뢰인의 집 대부분이 귀신의 통로나 상을 비추는 것으로 알려진 ‘비추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걸로 우리는 이 집에서 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볍게 예상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첫 피해자를 다룰 때의 예고 방식이다. 카메라는 나뭇가지 사이로 아버지를 잡고, 바로 다음 화면으로 닫힌 나무 기둥을 중앙에 배치하고 막힌 구도로 화림, 봉길, 영근, 상덕을 잡는다.(일본에서는 이 '틈'이 앞서 설명한 소재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 예를 들어 유명한 강령술인 여우 창문은 손가락 사이로 귀신을 목격한다. 이 장면에서 나뭇가지는 창문과 함께 통로의 역할을 한다.) 반면 관을 임시로 안치하기 위해 방문했던 영안실은 거울을 통해 캐릭터의 뒷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도 앞으로 영안실에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한다. 


  또 하나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제시하는 게 ‘여우’라는 점이다. 처음 이 영화를 따라갈 때 영화라면 꼭 있어야 하는 메인 기틀을 잡지 못해서 혼란했었다. 관람 이후 차근히 되짚으니 여우의 역할이 더욱 명료하다. 처음에 다루는 챕터는 ‘들짐승’이 많은 곳에 묘를 쓰지 말라는 오랜 지혜를 이용했다. 예로부터 음양오행을 따져 묫자리를 선정하던 선조들은 들짐승이 많은 위치를 피했는데, 무속적 이유 말고도 짐승들이 묘를 파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들짐승이 아닌 ‘여우’를 명시한다. 여우가 후반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초반부터 감독의 의도가 심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이 묘지에 도착했을 때 여우의 개체수에도 불구하고 묘는 원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화면에서 묘는 정확히 그늘에 위치한다. 즉 감독은 상덕이 확인하기 전부터 들짐승조차 건드리지 않는 불길한 묘에 대한 묘사를 대놓고 한다.


  그렇다면 왜 여우일까? 작 중 후반에는 사건의 원인인 음양사에 대해서 '여우 새끼가 음양사가 되었다'는 풍문을 언급한다. 게다가 음양사는 장군이 죽어서도 한 장소를 지키도록 주술을 건 장본인이다. 일본 음양사의 속성을 고려했을 때, 여우들은 장군을 보필하기 위해 음양사에 의해 선택되었거나, 음양사의 식신일 확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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