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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GMAAT Aug 07. 2023

우리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누구나 한 번쯤 어릴 적 학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 때문에 반 전체가 기합을 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초등학생인 시절까지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어린 나이에 연대책임이라는 단어의 뜻을 너무도 깊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너무 싫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다 같이 벌을 받는다는 게 너무 억울하기도 했다. 그 후로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에게 '나 하나'의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야기의 첫 시작부터 이런 추억을 꺼내보는 이유는 그만큼 '나 하나'의 힘과 영향력이 대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대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홍보할 때 꼭 빼놓지 않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지구를 위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중들은 자연스레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서 지속가능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세상을 요구하는 대중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나는 이런 흐름들이 좋은 변화의 징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속가능성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볼수록 ‘나 하나’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 모든 ‘나 하나’가 모여 대중이라는 집단이 형성되고, 그 집단의 목소리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실 밀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는 수십여 종에 달하는 토종밀이 야생에서 자라거나 사람을 통해 재배되고 있었고,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우리 토종밀로 만든 국수를 말리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런 풍경에 대해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


 1800년대 후반, 롤러 제분기의 등장과 함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밀가루에서 악취를 풍기게 하는 배아를 떼어낸 (흰)밀가루가 등장했다. 배아 없이 제분된 밀가루는 저장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이로 인해 밀가루 생산도 산업화를 거치며 대량생산과 장거리 유통이 가능해졌다. 물론 가격도 아주 저렴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흰 밀가루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로 우리나라에 대거 유입되면서 자연스레 우리 토종밀을 대체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뒤쳐지는 우리밀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태어날 때부터 흰 밀가루를 먹어왔던 요즘 아이들에게 밀가루는 으레 하얀색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흰 밀가루 먹는 게 뭐 어때서?”라고. 문제는 그 흰 밀가루가 ‘거의 죽은 밀가루’라는 것이다. 흰 밀가루를 만드는 과정에서 밀의 약 20% 정도를 차지하는 밀기울과 배아를 제거하고 나머지 약 80%의 내배유만을 제분하게 되는데, 고작 20%밖에 안 되는 밀기울과 배아에 밀 전체의 70~80%에 달하는 영양소와 향과 맛이 담겨있다.


 우리는 지금 대부분의 영양소를 떼어내고, 진짜 맛과 향을 잃어버린 밀을 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밀의 진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맛의 기억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어쩌다 발명된 그 기계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 하나라도 진짜 밀의 맛을 요구한다면, 그리고 나와 같은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든다면 잃어버렸던 우리밀의 다채로운 맛과 향, 그리고 추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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