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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별하 Jun 25. 2023

작은 의자의 소망

  ( 의자 같은 사람이고 싶다)

   작은 서재에서 아침을 연다. 나의 분신들이 첫인사를 건네는 듯 익숙하고 정답다. 매일 접하는 그들이건만 여느 날은 특별하게 내 눈을 확 끌며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이방인처럼 새로운 시선으로 방안을 기웃거려보았다. 책과 공책, 온갖 필기구들이 제멋대로 나뒹굴어 있었지만 제자리에서 한결같이 나를 받아주는 것은 의자였다.

   그는 언제나 나를 편하게 지지해주는 동반자였다. 무거운 내 육신을 투정 대지 않고 온전하게 온몸으로 받아주었다. 항상 한자리에 머물며 베풀고 있지만 나는 고마움도 외면한 채 당연시 여기며 그를 잊기 일쑤다. 감사는커녕 아예 투정까지 부리면서 옛정을 헌신짝 버릴듯한 기세로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는 수십 번 인내하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잠시 후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의자가 내뱉는 독백이었다. 

  항상 불평만 해대는 철없는 내 주인이 가엽다. 이젠 문명이 발달하며 새로운 것들이 출몰했으니, 더 편안한 것으로 길들여 살아야 한다면서 멀쩡한 나를 없애려고 하나 보다. 어쩌랴 이것도 나의 운명이라면 순응할 수밖에. 나는 주어진 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면 그뿐이리라.


   내 주인뿐 아니라 인간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힘들다고 오래 서 있을 때는 어떻든 귀한 대접을 받아왔는데. 이젠 살만하니까 푸대접을 하는 것 같다. 웬만큼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나를 외면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잘 사는 것이 싫다. 가난하던 시절, 나를 끔찍이도 대접하며 애지중지 해주던 추억이 그리워진다. 어릴 적 어른들은 자식들을 공부시킨다며 우선 나를 챙기지 않았던가. 튼튼한 나무 친구들을 모아 사포와 끌로 수십 번 문지르고 기름칠하고 닦아가며 톱과 망치로 토닥토닥 만들어 나를 빛내 주었다. 이때만큼 가장의 존재가 위대해 보일 때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아버지가 최고라고 대우받았을 것이고 나 또한 후광으로 번듯하게 태어나 온 세상을 얻은 듯 보람을 느꼈다. 그땐 자부심 가득 어깨도 으쓱으쓱했는데. 이제 여간해서는 성에 차지 않나 보다.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으니까. 

   길거리에서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보았다.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분명 나와는 태생이 달랐다. 하기야 뭐가 대수람. 사람이 앉기만 하면 그뿐이지. 은근히 부아가 나 몽니를 부렸다. 빨갛고 파란색의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가짜 의자들이 진짜 행세를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어 함부로 대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발로 툭툭 차고 간다. 내 자존심은 한없이 추락했고 의자라는 이름의 한계를 생각해봤다. 온갖 수모를 당해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야 하나 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인 책상, 수납장, 생활공간에는 온통 플라스틱으로 넘쳐난다고 방송을 해댄다. 유해환경 물질이라면서. 값싸고 편리하다며 마구 쏟아놓더니 이젠 공해 물질이라면서 타박한다. 인간 욕망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하다. 너무 풍부해서 소중한 것도 잊어버리니 마음의 병폐가 만연한 것 같다. 나도 쓸만한데 쉽게 버림받고 있으니까.


  이젠 내 존재를 탓하지 않겠다. 본연의 이름값 역할만 충실하게 하고 싶다. 나를 필요한 곳에 쓰임새 있는 역할을 하면 그뿐이리라. 피곤하고 힘든 사람에게 우선 다가가 기꺼이 내 한 몸 희생할 줄 아는 아량을 베풀고 싶다. 그들은 안락함을 절실히 느낄 테니까. 어린이에게는 안전을 담보하는 보조 친구로, 청소년에겐 지구력을 받쳐주며 공부하도록, 사장님들에겐 사업이 술술 돌아가게 해주는 역할까지, 품격에 어울리는 내 가치로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나는 그들의 진정한 보금자리가 되길 희망하면서. 

   어느 날 내 정체를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인간들에게는 나의 쓰임새가 두루두루 차고 넘치는 것 아닌가. 요즘 부쩍 나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가며 내 친구들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까. 길거리, 숲속이나 병원, 사람들이 살아가는 어느 곳이나 내가 받쳐주고 있어 큰 자부심이 느껴지고 살맛 난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나로 태어났으니. 그래서인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진가를 알아보고 칭송까지 한다. 편안하고 아늑하며 제 기능을 다한다고. 내가 진정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지만. 

   나는 아무래도 상징하는 존재일 때 더 빛나는 것 같다. 가끔 내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각별한 의미를 붙여주며 바라봐주니 기분 좋다. 그중에서도 내 유명세는 ‘조병화’ 시인의 의자다. ‘지금 어드메쯤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라고. 내가 외롭고 힘들 때 위로받았는데 사람들도 그런가 보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내어 주고 물려주는 일. 이 시만큼 나를 자부심 있게 도와주는 것은 없으리라.


   우리는 이 세상에 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신의 부름대로 역할 찾아 왔을 테니까. 나는 ‘의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헤아려보니 내가 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때론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존재처럼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기도 하지만. 나는 내 역할에 만족한다. 우선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줄 테고, 건강까지 챙겨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름값은 했으리라. 

 아침을 몰고 오는 의자. 지금까지 나를 쭉 지켜봤던 목격자.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인의 속 깊은 이야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먼 옛날 선조들의 삶을 내가 물려받았듯이 나 또한 자리를 비워주며 내주어야 한다고. 그것은 작지만 아름다운 삶을 가꾸면서 살아야 할 나의 여정이라고. 누군가로 오는 미래의 그분을 위하여 ‘작은 의자’가 품었던 소망을 가진 사람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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