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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마이크 May 25. 2023

음악으로 빛나는 세계, 그 속으로 끌어들이는 인디밴드

로컬 뮤지션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

“밴드 공연이요? 전 살면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거의 없는데요?”

외출할 때 지갑보다 에어팟을 더 먼저 챙기며, 혹시라도 에어팟을 두고 온 날에는 마치 그날의 외부 일정이 모두 망그러진 양 ‘대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할 만큼 음악을 듣고 사는 현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없었다. 대학 축제를 제외하고선. 아마도 스마트폰으로 듣는 것이 편해서 그랬던 것 같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쑤시개보다 더 작게 보이는 가수를 향해 소리 지르다 결국은 공연장의 큰 스크린으로 그들을 봐야 할 것 같았기에 매번 합리적으로 방구석 1열을 선택했던 거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동료는 2023년 3월 대전 유성구에서 열린 ‘어궁짝꿍 2기: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주인공이 되는 로컬 브랜드 밋업’ 행사를 준비하며 밴드 공연을 기획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밴드 공연이요? 전 살면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거의 없는데요? (울음) 안타깝게도 저는 뛰어 놀 줄 모르는 (라식으로 드디어 안경 벗은) 샌님이란 말입니다... 공연 기획은 뭐부터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고요.” 이모저모로 투덜댄 뒤 다른 일에 매진하고 있을 때쯤, 내 동료는 어느새 밴드 섭외와 인터뷰 일정까지 잡아두고 함께 가자 했다. 밴드 이름은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 첫 인터뷰 날짜는 3월 15일이었고 30일 행사 전까지 한두 차례 더 이야기를 나눴다.




첫 인터뷰 날. 궁동의 한 연습실에서 4명의 멤버를 만났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넷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카메라 너머로 들리는 그 내용이 너무 웃겨서, 인터뷰이(Interviewee) 덕에 인터뷰어(Interviewer)인 우리가 긴장이 풀린 흔치 않은 경험으로 만남을 시작했다. 그 순간 동시에 이렇게 웃긴 4명이 어떤 음악과 공연을 하는지 궁금해졌고, 이들이 함께하는 것이라면 뭐든 재밌는 게 나올 수 있겠다는 작은 확신이 움텄다. 공연 기획은 해보지 않았지만 이 넷과 하는 것이라면 꽤 괜찮을지도, 아티스트 인터뷰는 써보지 않았지만 이 네명의 얘기라면 꽤 재미있을지도, 하며.


그 재밌는 4명의 멤버는 보컬 초칠리, 베이스 영의정K, 드럼 김말창, 기타 밍키짱키 씨다. 약간의 멤버 변화를 겪으며 현재의 멤버로 합을 맞춘지는 1년정도 되었다. 초칠리 씨와 영의정K 씨가 초기부터 함께 했고 이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대학 때 KT&G 상상유니브 보컬 클래스에 같이 참여해 버스킹하다가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그 재밌는 4명의 멤버는 보컬 초칠리, 베이스 영의정K, 드럼 김말창, 기타 밍키짱키 씨다. 약간의 멤버 변화를 겪으며 현재의 멤버로 합을 맞춘지는 1년정도 되었다. 초칠리 씨와 영의정K 씨가 초기부터 함께 했고 이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대학 때 KT&G 상상유니브 보컬 클래스에 같이 참여해 버스킹하다가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초칠리: 처음부터 전문 밴드로 시작한 건 아니고, 보컬 클래스를 함께 수강한 사람들끼리 8~9명이 돌아가면서 취미로 버스킹을 했었어요. 어느 날은 길 가던 분이 “돈 줄 테니까 공연 한번 해볼래?” 해서 공연해보기도 하고,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어느순간 갑자기 진지해졌어요. 다들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취업할 친구들은 취업하고, 그중 4명이 “우리가 밴드를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 넷 중에서도 저와 영의정K가 지금까지 남아있고, 김말창과 밍키짱키가 합류하면서 지금은 이렇게 4명이 활동하고 있죠.


4명으로 구성된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는 소년과 사나이, 그 사이 어딘가의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 소개했다. 2016년 결성해 어느덧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 8년 차가 되었다. 그 사이엔 서울에서의 활동도 있고, 전국 각지에서 이뤄진 셀 수 없는 공연도 있다. 지난 8년의 활동을 하며 신체적인 에너지는 줄었을지라도 쌓이는 경력과 연륜으로 무대를 채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의정K: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점점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연주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무대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보여야 관객분들이 더 신나게 즐기실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죠.


이들의 음악 중 음원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총 19곡. 혼자만 알 수 없는 좋은 미발매 곡들이 많은데 그중 몇 곡은 밴드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되어있다. 발매된 곡 중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의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낸 곡은 ‘Berry Christmas’라고 생각하는데, 밝은 사운드와 쉬운 가사, 다소 빠른 템포와 높은 음을 노래할 때 가장 반짝이는 보컬 초칠리 씨의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미발매 곡 중에선 ‘피리 부는 소년’이다. 경쾌한 음과 동화 같은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날씨 좋은 한가로운 날 놀이동산을 걷는 기분이 든달까. 알록달록 가벼운 옷과 새 신을 신은 채로.


영의정K: ‘Berry Christmas’는 작업할 때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작업하고 녹음하는 과정을 촬영해서 메이킹필름처럼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댓글로 어떤 분이 ‘저 사람들 되게 행복해 보인다’고 적어주셨더라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래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기도 하고요.
초칠리: 전 ‘네가 없는 이 방’을 가장 좋아해요. 가사는 조금 쓸쓸한데 멜로디는 쓸쓸하지 않거든요. 저희의 필살기에요. 발매되지 않은 곡 중에는 ‘김요한의 기묘한 가면 샵’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사람들 모두 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나' 하는 취지에서 만든 노래예요. 기묘한 가면 샵에 들려서 나에게 필요한 모습을 사서 쓰고 다닌다는 내용이죠. 웃고 있지만 울고 있고 울고 있지만 웃고 있는 내용의 풍자적인 노래에요.초칠리
김말창: 저는 '자화상'이라는 미발매 곡을 좋아해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모티브로 한 곡이에요. 시를 노래로 만든 것처럼 생각하며 들어주세요. 또 '통통한 여자'라는 곡을 좋아해요. 타이트한 리듬과 따듯한 멜로디의 조화가 사랑스러운 곡이에요. 이 두 곡 다 미발매이긴 하지만 저희 유튜브 채널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밍키짱키: ‘살랑살랑’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그게 진짜 쉽고 재미있어요. 약간의 율동도 있고요. 시그니처죠.


뛰어난 무대 매너로 관객과의 소통뿐 아니라, 단번에 ‘좋다’, ‘잘한다’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을 겸비해 현장 공연에 특히 강한 이들은, 직접 공연을 기획하기도 한다. 대전 궁동에서 열리는 ‘월세 공연’과 ‘궁동 인디데이’다. ‘월세 공연’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합주실 월세를 내기 위해 시작된 공연인데, 회차마다 게스트 한 팀을 초청하여 함께 공연한다. ‘궁동 인디데이’는 궁동에서 열리는 인디 뮤지션 페스티벌로 2016년 11월에 처음 열렸다.


초칠리: 홍대에 가면 라이브 클럽 데이라고, 여러 아티스트가 공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3~40팀 정도가 공연하고, 관객들은 원하는 공연을 다양하게 골라 볼 수 있는 형식이죠. 그런 행사를 대전에서 ‘궁동 인디데이’ 라는 이름으로 기획해 본 거예요. 홍대보다 규모는 작지만, 대전에서 활동하는 팀이나 서울에서 대전으로 공연 오고 싶은 팀을 섭외해서 진행했어요. 사실 수익적으로 큰 성과는 없었어요. 저희가 이걸로 돈을 벌어서 참여한 팀 모두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자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팀을 소개하고 공연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었던 거죠. 우리 동네에나 가게에서도 이런 공연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요.


이들은 로컬 뮤지션, 동네 아티스트와 상생을 위해서 공연의 자리를 계속해서 기획하고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지역에서 밴드가 오래 활동하려면 다양한 공연의 기회가 마련되고, 이를 즐기는 문화가 지역 내에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의정K: 지역에서 밴드가 어려운 이유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걸 무시 못 하는 거 같아요. 사실 밴드 활동으로 큰 돈을 벌기는 어렵기 때문에요. 한 네 명이 모여 하고 있는데 한 명이 취업하러 간다거나, 다른 일로 그만두게 되면 나머지도 조금씩 흔들릴 수 있고요. 그래서 더욱더 지역에서 다양한 팀들이 기회를 얻고 자신을 알려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획 공연이 필요한 거 같아요.
초칠리: 대전에서 인디밴드 행사가 많이 열려서 ‘대전팀도 잘한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행사 기획팀은 예산 내에서 팀을 부르는데 대부분 사람은 더 유명한 팀을 원할 테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팀들은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와 같은 섭섭한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엇갈림이 어느 지점에서라도 잘 해결되어 서로 좋은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인터뷰까지 마치고 ‘어궁짝꿍 2기: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주인공이 되는 로컬 브랜드 밋업’ 행사에서 이들의 ‘찐’ 공연을 처음 봤다.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지역에서 밴드 활동을 지속하며 말 못 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지금도 있겠지만, 공연의 순간만큼은 이들에게 세상의 어떤 뾰족한 바늘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작은 스마트폰과 더 작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겨온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음악으로 사람이 빛나는 세계. 한동네에 사는 우리가 한 음악을 듣고, 한 동작을 따라 하고, 한 가지 기분에 심취해 웃고 있는 세계. 끝이나면 돌아가야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끝이 무시된 자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세계.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는 그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행사 스태프로 뒤에서 멀찌감치 그 세계를 바라보다가 공연 막바지에는 나도 그 세계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일하며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이 세계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활동을 시작할 당시 팀원 대부분이 충남대 학생이라 자연스레 대전 궁동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 현재 활동하고 있는 4명도 모두 대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대전 사람이다. 이 밴드와 같은 로컬 뮤지션이 지역에서 이어 나가는 공연 활동은 단순히 한 번의 공연을 넘어서, 대전 속 동네의 문화 풍경을 만드는 일이며, 자신의 삶을 보내는 터에서 자연스럽고 쉽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뒷받침하고 보장해주는 일이라는 걸 알게됐다. 


대전에 여행을 오거나, 성심당에 빵 사러 왔다가 너무나 자연스레 저녁에는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와 다른 뮤지션의 공연까지 즐기고 갈 수 있는 루트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우리 대전인에게는 퇴근 후에 편안한 옷과 마음가짐으로 보러 갈 수 있는 공연이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있다면 어떨까. ‘동네 라이프스타일’이 훨씬 더 다채로워지고 재밌는 일상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상상하건대, 우리 지역을 소개할 때 ‘관광 11경’이나 ‘핫플레이스’를 드는데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 공연 그리고 문화로 신나게 떠들 수 있는 날을 그려 본다. 


“프랑스 지베르니 가보셨나요? 클로드 모네 작품<수련>의 배경인 곳이라 파리에 간다면 꼭 들렀다가 오고 싶어요. 그 안에 모네의 스토리가 있으니까.”


“대전 가신다고요? ‘오빠야문열어딸기사왔어’ 밴드 공연 날짜 맞춰가시는 건가요? 대전 갔으면 그 밴드 공연은 보고 와야 하는데. 궁동 로데오 거리를 배경으로 쓴 곡도 있다고요. 거기에 가면 그 곡은 꼭 들어야 해요. 돌아오는 길에 성심당 보문산 메아리 빵 먹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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