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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환 May 21. 2024

혀 사용법 (메롱할 때 빼고)

    나에게는 새가 있다. 새는 좋은 새였다.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새에게 쉴 새 없이 고백해 댔다. 새는 나의 고백을 잘 들어줬다. 새는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사면해 주었고, 앞으로 다가올 걱정과 근심을 미리 면제해 주었으며, 내가 새에게 한 잘못들도 용납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새가 생각날 때마다, 정확히는 용서나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창가에서 새를 기다렸다.


    그날은 기분이 좋았다. 새에게 고백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위로받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새에게 처음으로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니. 매일 내 말 듣는 거 힘들지 않니. 새는 부리를 벌려 입 속을 보여주었다. 나는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했던, 할 예정인 그 어떤 고백들 보다도, 혀를 가지고 있는 일이 더 큰 사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새는 내가 합평을 하듯이, 새들을 불러모아 내가 한 말들을 모으고 엮어 들려 주었다고 한다. 내가 합평 때 모진 말을 했다는 이유로 멀어진 친구는 새들이 모여있는 현장을 발견했다. 그 친구는 모진 말만 반복하는 새에게 말을 가르쳐 주었다. 말에는 영어도 있고 중국어도 있고 프랑스어도 있었지만, 친구는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새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 친구가 가장 잘 하는 언어는 한국어이기도 했고, 한국어를 한다는 것은 새가 밟고 있는 땅에서 발생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는 내가 하는 말을 좋아했다. 


    새는 이제 말을 할 줄 안다. 그러자 나는 새를 계속 새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고민했다. 세상에 말하는 새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하는 새는 더 이상 새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아니면 말은 인간의 것이므로 새의 말은 말이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 걸까. 그런데 새가 배워온 말은 한국어이므로 나는 별수 없이 새를 인간이라 불러야 할 터인데, 인간이 같은 종인 인간을 인간이라 칭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종種이라는 건, 나와 같은 인간이 인간 이외의 것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편리한 말의 수단에 불과하다. 종種이라는 건 우리가 발견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그럼으로써 부르고 칭할 수 있게되는, 어떤 수학적인 약속에 불과하다. 우리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인간아, 라고 부른 적 없다. 욕할 때 빼고. 나는 새(인간)를 욕하고 싶지 않으므로 그래선 안된다. 무엇보다 날개달린 인간은 없다. 그런데 말을 한다고 해서 새와 인간 중 한 가지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말하는 새>로 새新로 명명하는 방법은 없을까? 대충 종種의 발견이라 얼버무리고 앞으로 그렇게 부르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말인데. 아니 그것보다 말이 정말 우리의 것이야?

    살짝 어지러웠다.

 

    종種의 발견이라고 하면 자연과학대학에서 노발대발 댈 것이니 그냥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이름은 내 마음대로 지을 것이다. 마음대로 지었으니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새! 너는 이제부터 인간이다. 너는 말을 할줄 알고, 내가 너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부를 때 새가 아니라 내가 붙인 단 한 가지의 이름으로만 부를 것이다. 너를 불렀는데 다른 새가 올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고 너를 부르지 않았는데 네가 올 일도 없을 것이다. 누구든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며 너를 부르는 말 한 마디로 너의 정체는 발각될 것이다. 이제 너는 다른 모든 새들 중에서 가장 인간다울 것이고 세계 모든 인간들 중에서 새다울(?) 것이다. 새는 기분이 좋은지, 언짢은지 날개를 툭툭 치더니, 다른 새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잘가, 새야!


    그런데 그 새는 인간이 되기 싫어서 새들에게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새를 찾던 마음이었던 것일까? 

    살짝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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