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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xiom May 17. 2023

교육-下

나는 정형외과 레지던트다.

3년 차 때의 일이었다.

나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1년 차 레지던트를 '교육'하는 일이었다.

당직실 컴퓨터 앞.

감히 실수(누군가의 인생에서 사십 분이 삭제될 만한)를 범한 1년 차를 앉혀놓고 나는 교육을 진행했다.


“동훈아, 저번에도 이러지 않았었냐?”

“······.”


1년 차 동훈이는 면목없다는 표정을 짓고 땅바닥만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 자괴감, 피곤함 등이 진흙처럼 덕지덕지 묻어있는 듯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처방하다 졸았어?”

“···네.”

“어제 몇 시간 잤는데?”

“···2시간 잤습니다.”

“뭐 하다가?”

“일이 밀려서···.”


일이 밀려서란 단어가 들리자마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갓 들어온 1년 차에게 퇴근이란 것은 환상 속의 존재다.

최대한 열심히, 효율적으로 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퇴근이 아닌 네다섯 시간의 수면시간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여러 요인들(당직, 선배들의 부탁, 환자의 성격 등)에 의해 줄어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원인은 미숙함이다.

미숙하고 무식하기에 업무 속도는 물론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도 느리다.

그렇게 일이 밀리고, 밀린 일을 하다가 졸아서 또 일이 밀리고······.

비효율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죄송해요. 형.”

“동훈아 죄송하단 말 내가 하지 말랬··· 하아, 아니다. 어제 뭐 때문에 일이 밀렸는데?”


이럴 때는 잔소리는 최소화하고 원인 교정에 집중해야 한다.

그의 어제 일과를 부검한 뒤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다.


“한 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할 생각을 해. 인턴한테 드레싱 준비 시켜놓고 동의서, 처방 다 할 수 있다니까? 알겠어?”

“네, 형.”

“일단 빠르게 끝낼 생각을 먼저 해. 동훈아. 알겠지?”

“네, 형.”

“그리고 드레싱말이야. 어제 같은 날에는 차라리···.”


그렇게 나의 교육은 이십 분을 훌쩍 넘겼다.

이 시절의 나는 동훈이에게 군더더기 없이 오직 교육만을 해주었다고 믿었었다.

과연 그럴까?

나의 교육에는 노이즈가 없었을까?


“···좀 정신 차리고 일하려고 해 봐. 알겠어?”

“······.”

“동훈아?”

“······.”


1년 차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예전의 나처럼 혼자 공상에 빠진 건 아니었다.

전원이 꺼진 것 마냥 그는 졸고 있었다.

‘스위치를 내렸다.’보단 ‘정전되었다.’가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드르렁이란 전형적인 의성어가 있지만 동훈이의 코골이는 무언가 특이했다.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달까.


“······.”


그를 바로 깨우려다 말고 조용히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다 과거 병동 스테이션 앞에서 혼나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담당 교수가 사십 분 동안 내게 쏟아냈던 것은 분명 내게 필요한 교육들이었다.

문제는 분노라는 노이즈가 과하게 껴있었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수, 선배들도 마찬가지로 교육에 분노를 더했다.

왜 그럴까?

일차적으로는 일에 지장이 생기니 짜증이 나는 거겠지만,

또 다른 이유(혹은 변명)들도 있다.


‘좋게 좋게 말하면 쉽게 보고 배려해주지 않는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99번 잘해주고 1번 지랄하는 것보다 99번 지랄하다가 1번 잘해주는 게 낫다.’

‘아랫사람들은 결국 성격 더럽고 목소리 큰 놈 말을 더 잘 듣는다.’


특히 마지막 말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레지던트들은 결국 지랄 맞은 교수님을 다른 교수님들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고 일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그래야만 하루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넘어가니까···.

결국 우리 스스로가 악순환이 끊어지는 걸 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젠틀함과 지랄 사이를 줄타기하며 현명하게 아랫사람을 다루는 교수님, 선배님들도 계셨다.

하지만 그분들이 아랫사람들의 1순위가 되는 일은 없었다.


‘박인수!’


내 이름을 그렇게 외치던 교수님도 젊었을 땐 천사 레지던트라 불릴 정도로 착했다고 한다.

알고 보면 그분도 처음엔 균형 있게 아랫사람을 대하려 시도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악독하게 변해버린 게 아닐까?


- ♬♩♬♩~.


동훈이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병동에서 온 전화다.

음량이 큰데도 동훈이는 전혀 일어날 기색이 없다.

아니, 일어나고 싶지 않은 걸까.


- ♬♩♬♩~.


동훈이에게 나란 사람도 결국 나를 혼냈었던 그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까?

그분도 나름 군더더기 없이 '교육'만을 했다고 생각했을까?


- ♬♩♬♩~.


핸드폰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난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공상들을 털어냈다.

더 이상 이럴 시간이 없다.

오늘은 무조건 이 녀석을 재워야만 하니까.

난 일어서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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