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커뮤니티와 참여형 스토리텔링

플레이어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내러티브

by 한주현

참여형 스토리텔링의 부상

현대 게임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상 중 하나는 플레이어가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를 넘어 적극적인 스토리 창작자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팬 커뮤니티와 참여형 스토리텔링은 전통적인 일방향적 내러티브 전달 방식을 혁신하여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적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창작 욕구, 소셜 미디어를 통한 콘텐츠 공유 문화의 확산,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상호작용적 특성이 결합되어 나타난 자연스러운 진화이다. 플레이어는 더 이상 주어진 스토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과 확장을 통해 게임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플레이어 커뮤니티의 스토리 창작 참여 방식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의 진화

사용자 생성 콘텐츠는 참여형 스토리텔링의 가장 직접적인 형태이다. 초기에는 단순한 레벨 에디터나 캐릭터 커스터마이제이션에 국한되었지만, 현재는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를 포함하는 완전한 스토리 창작으로 발전했다. <마인크래프트>(Minecraft, 2011)는 이러한 진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복잡한 스토리텔링 공간을 창조한다. 영화 재현, 역사적 사건 시뮬레이션, 완전히 새로운 판타지 세계 구축 등을 통해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특히 '마인크래프트 스토리모드'와 같은 플레이어 제작 어드벤처 맵들은 전문 게임 개발자 수준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확장 서사

현대 팬 커뮤니티는 게임 내부 활동을 게임 외부로 확장하여 새로운 형태의 확장 서사를 구축한다. X(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캐릭터의 일상을 묘사하거나 게임에서 다루지 않은 뒷이야기를 창작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오버워치>(Overwatch, 2016) 커뮤니티는 이러한 확장 서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블리자드가 제공하는 공식 설정과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팬들은 각 캐릭터의 일상생활, 과거 이야기, 캐릭터 간의 관계를 상상하고 창작한다. 이러한 팬 창작물은 때로는 공식 설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개발사와 팬 간의 상호작용적 스토리텔링을 형성한다.


집단 창작과 위키 문화

팬 커뮤니티의 또 다른 특징은 집단 창작 활동이다. 위키 시스템을 활용한 협력적 설정 정리와 확장은 단일 작품의 세계관을 방대한 우주로 확장한다.

<SCP 재단>(SCP Foundation)은 집단 창작의 극한 사례로, 수천 명의 창작자가 공통된 세계관 하에서 기이한 존재들과 이를 연구하는 재단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엄격한 편집 가이드라인과 투표 시스템을 통해 품질을 관리하면서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를 유지한다.


팬 픽션 문화의 분석과 영향

팬 픽션의 진화와 다양화

팬 픽션(Fan Fiction)은 기존 작품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활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활동으로, 게임 분야에서도 중요한 참여형 스토리텔링의 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팬 픽션은 단순한 2차 창작을 넘어 복잡하고 정교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진 독립적인 작품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팬 픽션은 게임의 제한된 서사를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한다. 캐릭터들의 과거 이야기, 게임에서 다루지 않은 후일담, 다른 시간대나 평행우주 설정 등을 통해 원작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구축한다. 특히 로맨스, 일상, 철학적 탐구 등 원작 게임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측면들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작품들이 많다.


캐릭터 재해석과 다양성 확장

팬 픽션은 원작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캐릭터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성소수자, 다양한 인종, 장애인 등 원작의 다양성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팬들이 적극적으로 보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 팬 픽션에서는 링크와 젤다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하거나, 사이드 캐릭터들의 독립적인 모험을 그린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재해석은 때로는 게임 시리즈의 후속작 개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팬 픽션과 공식 설정의 상호작용

현대 게임 개발사들은 팬 픽션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공식 설정에 반영하는 경향을 보인다. 팬들의 해석과 요구가 개발진의 창작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더테일>(Undertale, 2015)의 개발자 토비 폭스는 팬 커뮤니티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공식 콘텐츠에 팬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는 팬 커뮤니티의 창작 열의를 더욱 고취하여 게임의 문화적 영향력을 크게 증대시켰다.



모딩 문화와 기술적 창작

모딩의 스토리텔링적 잠재력

모딩(Modding)은 기술적 개조를 통해 참여형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단순한 게임플레이 조정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와 세계관을 구축하는 모드들이 등장하면서, 모딩은 독립적인 게임 개발의 입문 과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엘더 스크롤 5: 스카이림>(The Elder Scrolls V: Skyrim, 2011)의 모딩 커뮤니티는 이러한 잠재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Enderal’이나 ‘Forgotten City’와 같은 대형 스토리 모드들은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제시하며, 상업용 게임에 견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드들은 때로는 독립적인 게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엘더 스크롤 5: 스카이림 포가튼 시티 스토리 설명 영상 (출처: 모험러의 새로운 모험 유튜브 채널)


기술적 창작과 내러티브 혁신

모딩은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모더들은 기존 게임 엔진의 한계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예측 불가능한 내러티브 효과를 창출한다.

<게리 모드>(Garry’s Mod, 2006)는 이러한 실험정신의 결과물로, 게임 자체가 창작 도구가 되어 수많은 내러티브 실험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플레이어들은 기존 게임의 자산을 조합하여 영화, 애니메이션, 인터랙티브 스토리 등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을 제작한다.


모딩 커뮤니티의 협력 문화

모딩 커뮤니티는 기술적 지식과 창작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협력 문화를 발전시켰다.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작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협력하여 하나의 모드를 완성하는 과정은 소규모 게임 개발팀의 작업 방식과 유사하다.

특히, <도타 2>(Dota 2, 2013)의 커스텀 게임 모드들은 이러한 협력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Auto Chess’와 같은 모드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 장르를 창조했으며, 이는 상업적 게임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참여형 스토리텔링의 도전과 기회

품질 관리와 브랜드 일관성

참여형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품질 관리와 브랜드 일관성 유지다. 다수의 창작자가 참여하는 환경에서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고, 원작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성공적인 사례들은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단계적 검토 시스템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블록스>(Roblox, 2006)는 연령층 별 콘텐츠 필터링과 커뮤니티 자율 규제 시스템을 통해 건전한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저작권과 수익 분배

팬 창작물의 상업적 활용과 관련된 저작권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원작의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는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일부 개발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 창작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팀 워크샵(Steam Workshop)의 수익 분배 시스템이나 유니티 에셋 스토어의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술적 접근성과 창작 도구

모든 플레이어가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접근성 또한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복잡한 프로그래밍 지식 없이도 창작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 개발이 필요하다.

<드림스>(Dreams, 2020)나 <슈퍼 마리오 메이커>(Super Mario Maker, 2015)와 같은 게임들은 비전문가도 쉽게 창작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여 창작 활동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결론: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미래

팬 커뮤니티와 참여형 스토리텔링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상호작용적 특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창작 패러다임이다. 더 이상 개발자만이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세계관을 확장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 산업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 개발사는 통제와 개방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야 하며, 창작자는 원작에 대한 존중과 자신만의 창의성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한다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풍부하고 다층적인 스토리텔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포용적인 스토리텔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키워드: 참여형 스토리텔링, 팬 커뮤니티,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 팬 픽션 문화, 게임 모딩, 집단 창작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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