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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퍕 Apr 03. 2024

코인 빨래방에서 운동화 씻기

일상


현관을 드나들다 보니, 아들 녀석의 흰 운동화가 때가 타서 시커멓다. 저걸 언제 씻어야 하는데... 운동화 세탁소에 갔다 맡길까도 생각했었지만, 번번이 잊어버린다. 늘 현관을 오갈 때만 생각나는 것이다. 아파트 안 상가 안에 코인 빨래방이 생긴 것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꼭 운동화를 씻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지인님의 말씀이 한 켤레만 씻으면 안 된단다. 5켤레 정도가 딱 좋다고 했다. 신발장을 열어 씻은 지 꽤 된 운동화를 몇 켤레 더 꺼내었다.


나의 오지랖인지 선입견인지.. 왠지 세탁기가 깨끗하게 씻기 힘들 거라는 흔들리는 믿음에 아들아이의 흰 운동화는 따뜻한 물에 과탄산을 풀어서 애벌 세탁을 했다. 그쯤하고 손을 놓으려니 뭔가 아쉽다. 내친김에 나머지 네 켤레도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서 애벌 세탁을 했다.


그래놓고, 너튜브를 틀어서 '코인 빨래방 운동화 세탁'을 찾아보았다. 빨래방은 처음인지라...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도 유선생은 내 기대에 넘치도록 친절하고 세밀하게 사용 설명을 해주었다. 쓰임 없이 집에 놀고 있던 500원들을 다 소집했다. 무려 7,000원이나 되었다.


오늘은 딱히 오갈 스케줄이 없는 관계로, 늦은 아침을 든든히 먹고, 신발을 널찍한 비닐백에 담아 빨래방으로 갔다. 오전 10시가 갓 지나서였는지.. 아무도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텐의 커다란 용량의 세탁기와 건조기들이 니은자로 정렬해 있고, 실내는 깨끗하고 조용하다.




낯설어서, 일단 찬찬히 살펴보니, 마침 운동화 전용 세탁기가 눈에 띈다. 세탁기 안에 신발들을 차곡차곡 넣은 뒤, 준비해 간 동전 하나를 넣자마자 위이잉 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이건 뭐지?'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동전을 몇 개쯤 넣었을까.... 운동화 전용 세탁기 위에 있는, 운동화 전용 건조기에 전원켜지면서 "윙~"하는 소리를 낸다.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하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아뿔싸! 세탁기 동전 투입구가  아닌 건조기 투입구에 동전을  넣은  것이다. 문제는 건조기는 돌아가는데 취소를 시켜보려 했지만, 버튼이 없다.


이 대략 난감한 상황을 어디다 이야기하고 조치를 받아야 할 것만 같은데... 이리저리 둘러보던 끝에 출구 손잡이 쪽에 박제해 놓은 사장님의 연락처를 보았다. 즉시 전화를 해서 나의 상황에 대해 얘기했고, 조처를 기다렸다.  


이런 일이 처음인 듯 사장님은 난감해하셨지만, 잠시 후  차분하게 원격으로 세탁기에 4,000원을 충전해 주었고, 나에게 1,000원을 더 넣고 세탁기를 가동하라고 일러 주셨다.


그렇게 우여곡절 세탁기를 돌려놓고, 한숨 돌리며 앉아서 책을 좀 들여다보자니 뭔가 셈이 좀 이상한 듯했다.  동전지갑에 동전이 3,500원 남아있다. 세탁기에 1,000원을 넣었으니 아마도 건조기에는 2,500원을 넣었나 보다. 그런데 사장님은 4,000원을 충전해 주었다. 내가 1,500원을 더 지급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전화하기도 귀찮고, 동전 세 개를 꺼내 안내판 밑에다 쏙 밀어 넣고, 사진 찍어 통화했던 번호로 문자와 같이 보냈다. 그랬더니 잠시 뒤, 전화가 왔다. 서비스로 시간을 더 넣어 드린 거라며, 다음에 많이 애용해 달라고 친절한 말씀을 건넨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는 낙장불입~ 동전은 그대로 두었다.





어느새, 세탁기가 제할 일을 다 끝냈노라 경쾌한 멜로디 신호를 보내왔다.  신발들을 다 꺼내서 건조기에 넣고, 남은 동전과 지폐를 포함 6,000원을 투입했다. 아까 사장님의 조언으로는 5,000원 으로는 건조가 조금 부족하다고 했다.


건조가 끝나고 보니 생각보다 깨끗하고 보송하다. 집에서 신발을 건조기에 한 번 돌렸다가 진동하는 고무냄새와 줄어든 모양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건조기를 열어  깨끗해진 신발들을 보니, 마음까지 상쾌하다. 그리고, 하나씩 비닐백에 넣으면서 세상 좋아졌음을 실감한다.


우리 어릴 적에는 일일이 주말마다 신발 씻고, 햇볕에 며칠씩 말리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는 운동화 전용 세탁소도 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땐 이렇게  코인 빨래방에서 대용량으로 신발을 씻고, 건조까지 할 수 있으니 참 편한 세상이다. 


집에서 여러 켤레의 신발을 한 번에 씻기 버거울 때, 코인 빨래방 괜찮은 것 선택인 것 같다. 단, 너무 고급이거나 특수 재질의 신발은 피하는 게 좋다. 일상 운동화 같은 경우는 가성비와 가심비가 모두가 굿이다. 5켤레 한꺼번에 가지고 가시길 권한다. 그리고, 세탁과 건조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산책하거나, 아니면 차 한잔과 미뤄 두었던 책 한 권 들고 가  읽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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