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의 걸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찾아서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과 예술작품들이 함께 모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톨레도 대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톨레도 시청건물에는 스페인 국기와 톨레도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게양되어 있다.
톨레도 골목길에서 만난 동판 지도는 주요 명소들을 번호로 표시해 놓았지만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여기저기 이어진 골목길은 어디가 어딘지 숨은 미로 찾기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 볼 수밖에...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중세 유럽 느낌 물씬 나는 골목길들이 나타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골목길은 같은 듯 다른 걷는 재미가 있다.
산타 이사벨 거리에서 눈에 띄는 이 세라믹 표지판은 1971년 결성된 '그루포 톨모(Grupo Tolmo)'라는 젊은 예술가 공동체를 기리고 그 공로를 치하해 헌정된 것이다. 톨레도가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도시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만 머물지 말고 현재의 예술을 창조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톨레도의 현대 미술 발전에 기여한 내용을 기리고 있다. 실제 이곳에 갤러리를 열어,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여는 문화적 사랑방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한참을 미로 같은 골목길 투어 중이다. 화려하지 않고, 투박한데도 싫증 나지 않는 거리풍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마사판을 판다는 돈키호테 로고가 재미있는 '마사판' 전문 가게이다. 아몬드와 꿀, 설탕, 달걀노른자를 넣어서 만든다는데 하나 사 먹고 갈까 했는데, 두 사람 다 고개를 도리도리 하는 바람에 그냥 스킵했다. 아! 왜 그냥 지나쳤을까... 그 맛이 아직도 궁금하다.
여기저기 보이는 기념품 가게들이, 묵직한 중세 골목의 포인트가 되어 주는 것 같다.
톨레도가 검으로도 유명해서 영화 '반지의 제왕'과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검들이 톨레도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세라믹 도자기류도 유명하다.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이 아니어서 신기했다.
걷는 재미가 있는 톨레도의 골목길을 여기저기 헤맨 끝에 소박한 외관의 한 성당 앞에 이르렀다. 바로 산토 토메 성당이다. 14세기 무데하르 양식(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이 혼합된 형태)의 종탑과 함께 옅은 색을 띠는 붉은 벽돌과 석재로 지어진 아담한 규모의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위대한 3대 성화('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라파엘로 산치오'의 '그리스도의 변모') 중 하나로 꼽히는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표 검사를 마치고, 내부로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 벽에 불멸의 걸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가로 3.6m, 세로 4.8m)의 거대한 캔버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1586년 ~ 1588년 '엘 그레코'가 그린 이 작품은 1323년 독실한 신자였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때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내려와 그를 직접 매장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 그림은 크게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로 나뉜다. 하단부의 지상은 차분하고 엄숙한 검은 의복의 귀족들이 백작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으며, 상단부의 천상은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빛 속에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영혼을 맞이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엘 그레코' 특유의 길게 늘어진 신체 표현과 강렬한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림 하단에서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백작을 가리키는 어린 소년은 '엘 그레코'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이다. 그의 주머니 밖으로 나온 손수건에는 '엘 그레코'의 서명과 아들의 출생 연도가 적혀 있다. 또한 화면 속 수많은 귀족 중 한 명은 '엘 그레코' 자신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은 여행 가기 전부터 이 그림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직관 후에도 그 감동이 컸는지 한동안 이 그림의 해설을 찾아보기도 하는 열의를 보였다.
산토 토메 성당 안 예배공간은 오픈하지 않아 둘러볼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여기저기 연한 살구빛을 띠는 빛바랜 벽돌 건물들과 톨레도의 햇살이 어우러져 따뜻하고 안온해 보인다. 마치 이곳의 공기 색깔조차도 이런 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톨레도에 가신다면, 좁은 미로의 골목을 따라 산토 토메 성당으로 향해 보시길 추천한다. 그곳에서 당신은 16세기의 거장이 붓끝으로 그려낸 영원의 순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길을 따라서 '엘 그레코'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