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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Apr 12. 2022

: 버티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남들만큼 감정에 휩싸이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참 마음이 여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일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어쩌면 내가 강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체력은 안 좋아도 나는 마음이 강하구나. 내 몸의 근량은 미미하지만 마음의 근량은 어마 무시한 사람이구나, 내가 또.


 최근에 힘든 일을 이마에 정통으로 맞고 난 후 나는 또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번에도 지나가겠지. 나는 또 걸어가야지. 머리는 데구루루 굴러 떨어지고 팔다리는 아작이 난 느낌이었다. 대체 무엇으로 걸어간다는 말일까. 팔다리도 없는 내가 뭘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한없이 나약해진 느낌이었다. 세상에 무적은 없구나. 없었구나.


 그동안 남의 힘듦에 무감각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려봤다. 다들 이런 상태를 몇 번씩 겪었겠구나. 내가 고통에 무디다고 해서 남의 고통에도 무뎠음이 틀림없었다. 매일매일 최악이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내 대학원 생활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말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나 무사히 한 해를 지나갈 수 있을까. 올해만 넘기면 졸업인데. 일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삶의 목표가 졸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아득해졌다. 찰나의 순간 모든  놓아버리고 싶었다. 앉은자리에서 다시 눈을 뜨기까지 꼬박 8시간이 걸렸다. 대낮이 새벽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대책은 없었다. 나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다. 올해를 안전하게 보내고 싶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에 나가고 과제를 하고 발표도 하고 전시장 가서 전시도 보고 왔다.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었다. 일상도 학업도 열심히 하는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결론도 내렸는데,  지켜왔던 단순한 일상이 요새 너무 힘이 든다.  자다가도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올라오고, 새벽에 코피가 터져서 세면대로 달려갔다. 몸무게는 저체중으로 변한  오래고 나는  이상  수가 없다. 온몸에 구멍이  것처럼 먹는 족족  빠져나갔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마음이 강한 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버텼던 것 같다. 그러면 사라지는 줄 알고 온몸에 힘을 주고 뭐든 지나가길 바랬다.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에도 무뎌지고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새는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괴롭다고 느껴진다. 무너진 만큼 다시 열심히가 아닌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더 옥죄어 오는 것 같다.



 아무거나 품에 안고 기대고 싶다. 혼자 서 있는 것이 위태롭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나도 식물처럼 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철사에 내 몸을 고정시키고 싶다. 매일이 너무 아지랑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온전히 내게 품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에 슬픔이 사무친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등을 돌려 내게 화살처럼 박히는 것 같다. 나는 아프고, 괴롭고, 외롭고, 기대고 싶다. 나는 지금 너무 모든 것이 불안하다. 늘 내편이고 듬직했던 내가 일순간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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