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하고 싶진 않지만 날씨 때문일까. 팔, 다리, 머리 할 것 없이 중력의 힘으로 축축 쳐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거진 한 달째 똑같은 상태이다. 나는 현재 대학원생(aka 교수님의 노예)으로 이번 방학 계획은 딱 하나였다. 짧은 논문 하나만 쓰자. 아직도 논문 주제를 정하지 못했다. 방학 때까지 노예일 줄은 몰랐다. 이것만 하라고 해서 이것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자잘한 일들을 마치면 새로운 일을 주신다. 새로운 일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A가 아니고 A to Z였다. 처음엔 분명 A까지만 하라고 하셨는데.. 이상하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더불어 운동을 안 한지도 비슷하다. 짧게라도 꼭 땀을 빼고 자곤 했는데 요새는 침대 밖으로 나오는 일마저 힘이 든다. 작업하려고 마우스만 만지려고 하면 오후 4시다. 밥 먹으려고 정신 차리면 저녁 8시가 되어있다. 노예일 아니 작업하다 보면 새벽 3시다. 불규칙한 식습관과 말도 안 되는 수면시간으로 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번 방학 들어오면서 '나도 뇌를 조금 속여볼까 ㅋ' 했던 다짐을 이런 식으로 실현시키고 있었다. 역시 은연중에 다 계획대로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지만 지금 상태는 좋은 쪽이 아닌 것 같아 자만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항상 열심히 사는 것보다는 덜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너무 열심히 하다 주저앉게 되면 다시 일어날 힘이 없기 때문에 더 멀리 가기 위한 추진력을 위해 '덜' 열심히 살고 싶었다. 지난 학기 몸소 실천해보니 난 '더' 게을러지고 말았다. 시간은 한 바가지였는데 해내지 못했던 것들이 수두룩했고, 여유롭다는 생각에 마감시간을 벼랑 끝까지 가지고 갔다. 활력도 사라졌고 이상하게 남는 시간에 운동도 안 했다.
이게 아니었던 거다.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의 질이 높아질 거라 착각했다.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했다. 오늘이 무기력한 40일 중 하루이지만 내일은 그렇지 않은 날이 되었음 한다. 한 달 여전의 나를 서술하고 반성했으니 이후는 다시 뇌를 속이고 가위에서 깨어날 때처럼 온몸에 힘을 꽉 주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차례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