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화래진 Sep 13. 2020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

1주

 코로나 2.5단계와 함께 시작한 나의 대학원 생활이 만만하지 않다. 녹록지 않다는 게 더 와 닿을까. 수업은 당연히 비대면일뿐더러 나의 귀여운 동기들의 얼굴조차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무릇 공동체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면 동기들과의 우애를 다지는 것이 먼저인 것을... 동기사랑 나라사랑을 실천하고 싶다.


 800만원 가까운 입학금과 등록금을 헌납하고 내게 남은 건 사이버 강의와 무수한 과제뿐이었다. 연구실이라도 가면 나아질까 싶어서 열심히 연구실을 좀 알아보고 싶은데 알 기회를 통 주질 않네. 이럴 땐 직감뿐이다. 교수님의 인상과 연구실의 실적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오감에 직감을 이용해 보고 있다. 


 강의 또한 만만하지 않다. 경력 3년이라는 짧은 회사 생활 끝에 찾아온 학생의 삶이란 온통 물음표뿐이다. 뇌가 말랑말랑하고 창의력과 열정이 샘솟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한 마리의 들짐승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이 발표하는 걸 들을 때마다 흠칫흠칫 하고 내게 질문하는 교수님께 이빨을 내보이며 대답 대신 거친 숨만 내뱉는다.


 입학하기 전 교수님으로부터 면담요청이 들어왔다. 다른 과에 다니던 언니는 '올~ 입학 전부터 교수 면담? 잘 나가네~'라고 했지만 난 정말 내가 잘 나가는 줄 알았다. 면담 내용은 이러했다. '이전에 실내건축에 대한 이해가 낮다고 느껴 학부 설계스튜디오 설계를 두 개 정도 듣게 할 거임 ㅋ 그러면 너 졸업 한 학기에서 1년 정도 늦춰짐 ㅋ 그러니까 어디 아무 말이나 해봐 ㅋ' 정말 아무 말이라도 했다가 된통 혼나고 말았다. 진지하게 사람인 사이트를 열어 나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흔쾌히 받아줄 곳이 어디일까 보다가 조교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경력이랑 이모저모 내일 3시까지 메일로 보내주면 첨삭해 보겠다고 교수님이 말했으니까 어서 주련 ㅎ' 그 길로 밤새 이전 회사 직원들에게 연락을 돌려(퇴사할 때 아무 자료도 가져오지 않음_똥 배짱, 패기, 어리석음) 자료를 받고 다음날 아침에 승인(건설기술사 협회에서 하는 경력증명서) 요청까지 해서 가까스로 서류를 제출해 나의 능력을 증명해보았다. 그래서 두 개에서 하나로 줄었다. 열심히만 하면 생각했던 기간 내에 졸업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처음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그땐 의심하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