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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Jul 31. 2022

너의 신호를 알아채기 힘들다.

너의 신호를 알아채기 힘들다. 1

https://brunch.co.kr/@whale717/112


너의 신호를 알아채기 힘들다. 2

https://brunch.co.kr/@whale717/113




 오랜만에 본 오빠는 더 커지고 더 하얘지고 수다스러워졌다. 금 같은 연차를 내고 오는 길 섭섭지 않도록 뒤집어지는 코스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급하게 잡힌 세미나 준비로 갈 곳을 찾아보는 게 겨우였다. 금요일 당일 예약은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새삼 편하게 친구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하면서 첫 번째 음식점에 곰을 데려갔다. (이젠 오빠도 생략하겠다.)


곰이랑 서로 잘 지냈냐며, 뭐하고 살았냐며 이야기했다. 워낙 공통사가 많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을 나와서 맛있었냐고 묻자 고기가 퍽퍽해서 별로였어. 파전은 튀김옷이 적어서 파뿐이었잖아. 그래도 잘 먹었어. 막걸리가 맛있더라. 솔직한 감상평에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왜냐면 내가 속으로 생각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빠 이 카페는 분명 좋아할걸요? 하면서 데려간 카페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잘 모르겠고 내 마음에는 쏙 드는 곳이었다. 아주 호들갑을 떨면서 예쁘지 않냐고 물으니 예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이거 그냥 노출 콘크리트 아니야? 여긴 캔틸레버네... 아우... 난 캔틸레버 싫어... 를 연달아 발사했다. 아 난 근데 이런 게 왜 이렇게 웃기는지 모르겠다. 막 웃다가 정색하고서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빠 감성이 다 뒤져버렸네요. 이래서 구조하는 사람들이란...


카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드디어 주문을 하러 갔다. 패기 있게 카페는 내가 살게요 했다가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래도 롤케이크는 시켜서 잘 먹었다.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곰이 또 예전 일을 꺼냈다. 듣다가 지겨워진 나는 그만 하라며, 지금 대체 몇 년이 지났는지 알고 있는 거냐고, 그때도, 몇 년 전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을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아 그리고선 대체 왜 그렇게 밥을 먹자고 한 건지 다시 물어봤다. 곰은 그 당시에 같은 직종으로 진로를 정한 게 너뿐이라 그게 너무 궁금했고,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거다. 덧붙여 정작 일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지만... 하며 또 미안해했다.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이후로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자기 말로는 본인은 원체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몇 년간 연락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못 참고 했다는데, 내가 먼저 하지 않았나? 이렇게 기억이 사람마다 다른 게 참 신기하다. 


아무튼 그때는 구조를 하지 않았었는데 대체 왜 만나자고 했어요? 물으니 반색을 하며 그랬었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왜 만나자고 한 거예요?라고 하니까 내가 목적 없이 누굴 만날 일이 없는데, 심지어 너네 집 앞으로 갔잖아?라고 반문했다. 아 이 이야기는 끝도 없겠구나 싶어 대충 마무리했다. 대화하다 보니 어쩌면 내가 단단히 착각한 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급 마음이 편안해졌었다. 그래서 마지막 코스로 내가 좋아하는 종로3가역 포차 거리에 데려갔다. 


아무 데나 앉아서 덥덥한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 한잔 식도에 때려 넣으니 세상이 환해지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신나서 곰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동안 불편한 착각을 대체 왜 했는지, 역시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며, 이 곰한테 내가 놀아난 건 아닐까 하는 의식의 흐름이 있었다. 낮에 만나서 밤에 헤어질 만큼 많은 대화를 했는데 정작 기억나는 거라곤 곰이 키우는 거미와 흔하지 않은 물고기들 뿐이었다. 원래 만남이라는 게 다들 그런 건가? 아무튼 텁텁하면서 시원한 밤공기 마시며 아슬아슬한 막차를 타고 헤어졌다. 





결론 : 애초에 신호를 주지 않았다. 

        역시 로맨스는 판타지물이다.

        대화 잘 통하는 좋은 친구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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