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된다는 것
내게는 오촌조카가 있다. 뭐 여럿 있는 것 같은데 얼굴이랑 이름을 아는 조카들은 셋 뿐이다. 작은 이모의 딸의 아이들, 딱 셋을 알고 있다.
첫 회사에서 퇴사한 후 명절에만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사촌언니와 조카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놀러 갔다. 일 년에 두 번은 너무 짧았고,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무작정 인천에서 청주까지 2~3시간을 달려 내려갔었다. 그렇게 그 이후로 7년간 매달 청주로 달려가고 있다. 나도 몰랐다. 그 아이들을 이토록 사랑할 줄은.
직장, 친구, 환경, 성격 모든 게 변화무쌍했던 7년 동안 변화가 없던 것은 언니와 아이들을 보는 일뿐이었다. 사실 나 조차도 무언가 쉽게 질리고 좋다가도 마는 게 있어서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가 그리 순탄하진 못했다. 사람들은 깊은 관계를 원했고 막상 관계가 진전되면 깊은 관계가 어떤 선을 넘어도 되는 면죄부처럼 날 대하는 게 몹시 불쾌하고 불편하게 여겨졌다. 그럴 때마다 선을 긋고 상대를 멀리하는 선택을 했다.
한참 오래 만나던 애인과도 같은 이유로 헤어지고 친한 친구한테 선을 그을 때쯤 언니의 유혹은 단비와도 같았다. ㅇㅇ아 놀러 와 ㅎㅎ. 그렇게 난 육아에 일부 동참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언니랑 등원시키고, 언니 집안일 할 동안 남은 아이랑 놀다가, 언니랑 아이랑 셋이 콧바람 쐬고, 하원시키고 다 같이 왁자지껄 놀다가 지쳐 잠드는 게 나한테는 지친 내 삶의 꿀 같은 일상이었다. 맨날 큰 조카랑 싸우고 너랑 안 논다고 서로 소리치다가 언니한테 둘 다 혼났다. 서로 끝까지 안 쳐다보다가도 둘째 조카랑 엄청 잘 놀고 있으면 부러운지 와서 이것저것 말을 거는 소소한 시간이 굉장히 행복했다.
이모는 참 좋은 거구나. 책임 없는 쾌락. 그것은 딱 이모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첫째 조카는 유독 친구처럼 굴었다. 나도 모르게 친구처럼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내가 없어도 내 생각을 했다. 내가 사준 옷이나 편지를 기억하고, 나랑 했던 대화를 언니한테 말하면서 키득키득거렸다고 했다. 이 친구는 말하는 걸 참 좋아했다. 내가 언니네 집에서 대변을 보다가 변기가 막혔었는데, 그걸 유독 즐거워하던 작은 친구가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마침 그날 내가 하원을 하러 갔는데 해님반 선생님이 나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인 일이 있었다. 비밀도 없고 나의 존엄성도 앗아간 조카였다.
둘째 조카는 엉뚱하다. 어린이집 등원할 때 오분거리를 30분 동안 가는 마법을 발휘한다. 꽃이나 나비를 쫓다가 작은 돌에 빠져 한참을 쳐다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하원할 때는 어디서 얻은 건지 몸뚱이만 한 이파리를 들고 즐거워한다. 자꾸 이런 말만 적는 것 같아 웃기지만 한번 소변이 너무 급해서 어린이집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교직원 화장실이 따로 있는 줄 알았더니 그냥 아이들과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이었다. 아이들 틈에 화장실에 들어가니 밖에서 둘째 조카가 이제 곧 우리 이모가 나올 거라며 반 아이들을 화장실로 데리고 왔었다. 문 열기가 무서웠지만 막상 환영받으니 더 무서웠다. 애써 웃으며 안녕을 연신 외치고 도망 나왔다. 역시나 나의 수치심을 돌아보지 않는 순수한 아이였다.
사실 난 셋째 조카도 있다. 태어나고 돌 지나고부터 본 조카라 나에 대한 이질감이 단 한 개도 없다. 누구 딸이냐고 물으면 꼭 이모 딸이라고 한다. 이제는 초등학교를 이제 들어가야 해서 다음에 만나면 사실(출생의 비밀)을 고백할 생각이다. 말을 배우고 처음 외친 이름이 내 이름이었다. 내게 아주 값진 기억을 선물해 줬던 아이다. 수술 후 6개월간 빠지지 않고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줬던 다정한 조카다. 언니의 따뜻하고 다정한 기질이 가장 많이 닮아있는 듯하다. 항상 가족들이랑 다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속엔 나도 늘 포함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지 않아도 가족은 맞지만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 치고는 좀 먼 감이 있는데 셋째 조카는 그딴 개념 따위는 가뿐히 무시한다.
아이들의 세상에 나라는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심지어 매번 업데이트되고 세분화된다. 나를 더 보지도 덜 보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늘 고맙기만 하다. 인간 범벅인 현생에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괴로울 때면 아이들과의 세상이 그리워진다. 내 말을 말 그대로 들어주고 끊임없이 눈을 마주치며 꾸밈없이 말해주는 충분한 소통이 가능한 그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내가 우주의 먼지라는 생각이 들 때나, 나라는 톱니바퀴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하다가도 다정한 언니와 햇살 같은 아이들이 밤낮으로 나를 물어봐주면 내 작은 세상과 아이들의 큰 세상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반짝이는 아이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순간의 행복으로 고민이 덧없어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사랑이란 항상 복잡스럽고, 지저분한걸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어서 만든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카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면 주고받는 사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아이들과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관계에서 배운 사랑이란, 내 세계에 기꺼이 타인을 위한 공간을 두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의 사랑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