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세월에 속아 상대의 무례함을 애써 모른 척했던 적이 있었다. 나의 호의를 당연시하고 술기운을 방패 삼아 내게 욕을 던지던 그 해에 나는 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오늘은 아니 올해에는 정말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의지했던 그 친구와 이별을 준비하려고 한다. 정을 떼기가 참 어려울 뻔했는데, 친구는 그런 나를 독려하듯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늘 맞이해주고 있었다.
안 보고 싶은 걸 넘어서 꼴도 보기 싫은 때가 있었다. 마음을 비워내도 굳이 시간 내서 저 사람을 봐야 한다는 게 용납이 안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학창 시절 때처럼 모르는 척하고 무시하고 싶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학교에서 매일 함께했던 친구여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곤 했다. 왜냐면 매일 강제로 만나야 했던 초중고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시간과 돈을 내서 봐야 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시간을 내서 너를 봐야 하는 이유가 이제는 없어졌다.
대게 친구와의 이별은 연인과의 이별보다 가벼이 여겨지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연인보다 친구와의 이별이 어렵다. 연인은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내 경험상 친구가 나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 같다. 서로 크고 작은 피해를 주면서 말이다. 연인관계보다는 말랑한 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절교의 범위가 모호해진다고 느낀다. 친구나 연인이다 똑같다. 안 맞으면 피하고 재밌으면 함께 있고 안 궁금하면 끝인 거다.
이제는 친구와의 이별도 고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거 말고 서로가 왜 무관심해졌는지, 어떤 부분에 서로가 배려하지 못했는지, 부족했던 것들을 오답노트 삼아 다음 관계에 풀어보는 거다. 우정과 사랑은 각각이 아니다. 친구와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이 연인과도 무던한 관계를 맺는 걸 보았다. 또한 나 스스로의 관계가 타인과의 관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나와의 관계에서 솔직할 줄 알아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솔직할 수 있다. 나와 성숙하게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미성숙함으로 곁에 있는 친구를 잃을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오랜 친구와의 헤어짐은 완전하지 않았던 나와 분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땐 지금처럼 자아가 없었고, 내가 누군지 몰랐던 시점에서 만났다. 그러므로 친구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을 것이다. 나는 좋게든 나쁘게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그런 나를 과거의 틀에 가두고 대한다면 좋은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불편하다면, 오랜 관계가 언젠가부터 불편하다면 함께한 세월은 잠시 잊고 내 감정을 믿어보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