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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Apr 21. 2024

9살 조카와 방학을 보내보았다

어서 와, 서울은 처음이지?

2024.01

 어릴 때 방학마다 친척언니랑 오빠가 충주에서 인천까지 왔었다. 엄마는 결혼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났고, 언니가 둘이나 있었고, 그중 작은 이모가 낳은 언니, 오빠들과 친하게 지냈다. 언니랑 오빠는 내 첫 월경 파티 때도 함께였고, 명절마다 낯선 친척들 사이에서 우리 삼 남매랑 놀아준 유일한 사촌들이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 낳느라 친정에 못 오는 동안 나는 필사적으로 명절을 피했다. 막내가 태어나고 100일이 안되었을 때 이모한테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 언니 온대.


 그동안 촘촘히 사두었던 아기들 선물을 챙겨서 갔다. 친가인 대전에서 며칠을 보내고 외가로 가는 것이 우리 집 명절의 루틴이었기 때문에 대전에서의 날들이 지옥 같았다. 마침내 오랜만에 보는 언니와 벌써 커버려 어린이가 된 첫째,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둘째,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셋째를 볼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언니의 초대로 뻔질나게 아이들을 보러 지방에 내려가고 있다.


 첫째가 11살이 되던 해 145cm를 넘었다. 하루는 첫째 조카가 이모랑 둘이 말하고 싶은데 다른 애들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며 입이 피노키오 코처럼 나와서 툴툴 거리길래 별생각 없이 서울에 있는 나의 방으로 초대했더니 냉큼 온다고 하면서 나의 숙제가 시작됐다.


 그렇게 첫째가 가고 나서 둘째가 자기도 오겠다며 키를 키우고 몸무게를 열심히 늘려서 드디어 데리고 왔다. 살도 잘 안 찌는 애가 뭘 얼마나 먹은 건지 감도 안 온다. 몸무게가 늘 때마다 연락을 해왔고, 이모 2kg 늘었어.. 이모 기다려.. 등의 경고 아닌 경고 메시지를 받곤 했다. 그녀의 집념에 나는 놀랐고 더 하다가는 체하겠다 싶어서 평균 몸무게인 30kg 정도 됐으니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9살 조카와 일주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조카는 실로 대단했다.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탄 이후부터 가족들을 머릿속에서 지운듯했다. 정말 나랑 단 둘이 살아왔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내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또한 조카와 노느라 연락을 받지 못했고 아이를 타지로 보낸 부모님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뒤늦게 나는 언니에게 사진을 다발로 보내기 시작했고, 아이도 엄마와 아빠에게 전화를 하다가 씻고 잠드는 것이 우리 하루 루틴이었다.


 조카는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쇼핑에 대한 욕망이 거대했고, 원하는 것이 정확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기존 용돈에서 어떻게 써야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에게 이모찬스를 빌미로 원하는 것을 맘껏 양껏 살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엄마 없이 노는 것의 묘미 아닌가. 나는 칼로리 폭탄의 간식들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멋진 여성은 딸기를 먹는다는 빌미로 우리는 밤마다 딸기에 휘핑크림과 누텔라를 찍어 먹기 시작했다. 9살 조카는 연신 빵빵한 볼로 내게 최고를 외쳤고 나는 어깨가 올라갔다.


우리의 서울 여행은 대단한 것이 없었다. 하루 하나의 일정만 소화할 수 있는 체력과 세끼를 전부 먹지 않아도 되는 비슷한 생활패턴으로 하루는 DDP, 하루는 목동 스케이트장, 하루는 망원 카페, 소품샵 등등 소소한 일정을 소화했고 계획 없는 이 계획들에서 우리는 늘 만보를 걸었었다. 아침 겸 점심은 간단한 카레나 짜장을 밥에 비벼주거나 볶음밥을 해줬고 저녁은 치킨이나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그날 소비한 칼로리를 보충했다. 간식은 당연히 딸기였고. 자기 전에는 물을 와인잔에 마시며 하루를 회상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대망의 마지막 날, 방명록을 쓰고 가라는 내 말에 주저 없이 펜을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9살은 종이 빽빽하게 글을 쓰더니 자랑스럽게 내게 내밀었다. 둘이 깔깔거리다가 9살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아서 조카를 안다가 무심코 네가 가면 이모는 심심해서 어쩌지?라고 말하고 아이 얼굴을 보는데 이미 눈코가 빨개져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지 말라고 말했지만 이미 나도 울고 있었고 갑자기 그 상황이 웃긴 나는 멋진 여성은 조금만 우는 거라고 하고 다시 딸기를 먹었다.


그날 밤에 조카가 자고 밤새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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