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가면 철봉 두 개가 수평으로 있는 철봉이 있다. 나는 거기서 종종 치킨처럼 누워 있다. 양손으로 철봉을 잡고 뛰면 양다리가 철봉 위로 올라간다. 꼭 모양새가 트럭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했던 건데 서른이 넘어도 공원에서 평행봉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그 자세에서는 하늘을 보는 것보다 고개를 젖혀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게 편하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생각보다 몸이 가볍다. 땅에 두 다리를 던지는 순간 전기구이 통닭에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힘이 든다. 사람답게 살아가려 해서 어려운 것 같다. 내게 상처를 주는 이에게 사람답게 용서하고 싶어서, 나를 좋아하는 이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이유 없는 온정을 베풀고 싶어서, 그럼에도 혼자이고 싶어서. 복잡한 머릿속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몸이 물과 기름처럼 섞인다. 철봉에 누우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일어서면 다시 명확히 분리된다. 두 다리는 가볍게 걸으면서도 머리는 남은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다. 그다음엔 내일 할 일, 이번 주, 이번 달, 남은 올해를 향해 걸음을 빨리한다.
내가 사람다움을 잊지 않기 위해 꼭 기억하는 것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긴 취업준비 기간 중 자아실현을 해보고자 책을 한편 내보자고 결심한 작년이었다. 잡지사에서 진행한 출판캠프를 통해 몇 달을 매일 글을 쓰며, 자격증 시험과 병행했다. 올해는 이 두 가지를 끝내겠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뱉었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쩐지 여러 감정이 든다. 혼자만 읽는 글을 쓸 때는 주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늘어놓거나, 날것의 말을 흘려보낼 때였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은 부담스럽고 책임감이 든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진 않을지, 내 생각이라는 이유로 고집을 나열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도저도 아닌 글 투성이일 테니, 어중간한 그 순간에도 문장을 나열해 본다.
지나가다 본 영상에서 흰색과 검정을 선택한 사람들이 큰 소리를 냈기 때문에 단 두 개의 색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무수한 회색들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무수한 회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끊임없이 선택을 뒤돌아보며, 흰색과 검정의 장단점을 느끼고 있는 그런 목소리가 작은 회색이다.
전기구이 통닭부터 회색까지 다양한 말을 했지만, 결국은 살아가는 것도, 취업 준비도, 글 쓰는 것까지 어렵다는 고백이다. 과정 없이 완성본만 보여주기엔,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가들이 자주 말하는, 모든 것은 과정 속에 있다는 말이 지금 몹시도 와닿는다. 나는 지금 무수한 과정 속에 있다. 과정이란 너무 어렵고, 자주 지치고, 의욕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내일이면 오늘보다는 가볍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모든 과정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어디론가 나를 데려간다. 결과가 나와도 그것 또한 또 다른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끝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