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세 개의 입으로 말한다.

입, 머리, 심장입, 머리, 심장

by July

사람은 세 개의 입이 있다.

입, 머리, 심장


가끔 몸의 세 개의 기관이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생각 없이 자동으로 입만 나불거릴 때, 머리에 든 생각이 1차의 여과도 없이 흘러나올 때,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감정이 먼저 말할 때가 있다.


입이 말할 때는 대체로 머리보다 빠르다. 말은 생각보다 쉽게 흘러나오고, 한 번 나온 말은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 입이 앞서면 대체로 후회가 남는다. 감정이 앞서거나 자존심이 스칠 때 나는 입으로 먼저 반응한다. 그럴 땐 머리는 늘 늦다. “그 말은 하지 말 걸.” 이미 늦었다는 걸 아는 건 늘 그다음이다.


예를 들면, 시야가 좁아질 만큼 분노의 역치를 넘어,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낸 적도 있었다. 대학 때 스커트를 입은 내게 “너는 역시 뒷모습이 끝내줘.”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낮은 비명을 질렀다. “야.”

그 순간 귀가 뜨거워졌고,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얼어붙은 남학생과 나를 쳐다보는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있었다. 동기 언니는 내가 한동안 거칠게 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머리가 말할 때는 다르다. 이성은 논리와 균형을 찾는다. 머리가 말할 때의 나는 조심스럽고 계산적이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말의 여운을 예측하고, 그 결과를 미리 떠올린다. 그래서 머리가 주도하는 대화는 안전하지만 종종 차갑다. 감정은 가려지고 말의 온도는 식는다. 때로는 옳은 말이 꼭 따뜻한 말이 되지 못한다.


가령, 보육시설로 일주일에 한 번 봉사를 가는 내게 학생이 “이 수업 그만두고 싶어요. 힘들어요.”라는 말을 연달아 들었을 때였다. 봉사 시간 한 시간 반이지만 왕복 이동까지 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들인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다쳤다.


서운함을 누르고 이성을 불러왔다.

“힘든 게 있었구나. 그런데 나는 너를 만나러 먼 길을 와. 이런 말을 벌써 세 번째 듣고 있어서 나는 많이 속상해.” 가장 온도가 높은 감정을 입으로 표현해야 할 때는 차가운 뇌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터져 나와 상대도 나도 말을 어디로 끌고 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장이 말할 때. 그건 다르다. 논리도, 체면도, 계산도 내려놓은 순간이다. 심장이 말할 때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솔직하고, 때로는 다듬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진심에 가깝다. “미안해.” “고마워.” “좋아해.” 심장이 움직일 때만 나오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은 어색하지만 오래 남는다.


나는 입, 머리, 심장을 잇는 몇 갈래의 선을 가지고 산다. 입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심장으로, 그리고 다시 입으로 돌아오는 길. 그중 한 가닥이라도 끊기면 말은 날카로워지고, 감정은 과장되거나 축소된다. 모든 통로가 막혔을 때 나는 결국 거친 말을 꺼내게 된다. 다른 표현이 막혔을 때 남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할 때처럼, 말은 따뜻한 힘을 갖기도 한다. 만나면 붙어 있으려는 조카들에게 쏟아내는 애정 어린 말들. 나를 걱정해 주는 이모에게 사랑한다고 답하는 순간. 통화 끝에 늘 “사랑한다 우리 딸”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말하기 전 잠시 멈춘다. 입이 앞설 때, 머리가 늦을 때, 심장이 먼저 움직일 때. 그 사이에 있는 미묘한 간격을 살핀다. 그 간격을 알아차리는 일은, 내가 가진 마음의 온도를 선선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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