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고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어릴 적 어른들은 늘 나에게 고래가 되라고 말했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 또한 바닷속 수많은 물고기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학을 반복하며 여러 학교를 다녔다. 전셋집을 옮기거나 아버지의 이직 때문이었다. 숫기도 없고 낯을 가리던 나는 마지막 전학에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냈다.
여러 학교를 다니며 깨달은 건, 활발한 사람이 전학생으로서 가장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이 칠판 앞에서 나를 소개할 때마다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럴수록 조용한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마음의 결은 조금 달랐다. 학교는 내가 선택한 공간이 아니었지만, 친구만큼은 내가 직접 선택하고 싶었다.
그 시절 일기장에는 어렵게 만든 친구들과 또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 날도 있었다. 그만큼 친구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래서 다음 전학에서는 더 크게 웃고, 더 먼저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그렇게 건넨 한마디에 아이들은 쉽게 다가왔고, 전학 세 번째 만에 외롭지 않은 첫날이 되었다. 어렵게 만든 친구들과 중학교에 들어서며 경쟁하고, 견제받는 일이 늘어났다. 언제나 애매한 위치에서 욕심 없는 척 지냈다. 튀지 않는 것이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눈에 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집에서 아버지의 통제를 받으며 살았기에, 학교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좋아하는 과목에서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고, 시험에서는 꼼꼼히 준비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다 어느새 반장까지 맡게 되었다. 대회나 발표, 대표 같은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여겼지만, 막상 해보니 즐거웠다. 무대가 클수록, 내 목소리가 더 멀리 닿을수록 숨통이 틔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도 좋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을 주는 자리를 알게 된 뒤로는 그 즐거움을 놓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안정적인 삶을 바라셨다.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부모님 당신들이 바랐던 인생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염원은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말과 어딘가 모순되어 보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쳐 쓰러지듯 잠드는 부모님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삶을 그대로 물려받는 건 조금 두려웠다. 사실, 아주 많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기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쯤 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고래가 되어야지, 고래가.”
하지만 그건 고래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한 말이었다. 고래는 단지 덩치로 바다를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영리한 생명체다.
나도 영특한 고래처럼 스스로의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천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가고 싶던 대학원에 진학했고, 원하던 회사에서 일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를 드러낼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점점 선명해졌다. 글을 쓰며 어떤 기회를 얻었고, 그림을 그리며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가 살아야 할 바다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누군가가 기대하는 그런 고래가 되기 위해 헤엄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고래가 자신에게 맞는 바다를 찾아 움직이듯, 나 또한 맑고 깨끗한 바다에서 살아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설계한 길을 따라 살던 시절, 내 삶에는 깊은 공허만 남았다.
고래처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수고를 해서라도 자신이 머물 수 있는 물의 깊이를 찾아 헤매며 살아가고 싶다. 인생이 그런 여정이라면, 나의 숨이 닿는 곳까지 유영하며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