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했던 것이 좋아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돈가스, 면, 꽃, 그림, 여름, 검은색, 음악.
스무 살이 지나고 처음 사귄 사람과 사계절을 두 번 보냈다. 만나면 늘 밥을 먹던 우리는 그날도 식사를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창문에 비친 빛을 보다 문득, 일 년 동안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먹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게 멋쩍고 미안했다. 교제 일 년이 지나서야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너무 늦은 내 질문에도 감동받아하던 착한 그 사람의 얼굴이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우리는 밀면, 돈가스, 제육볶음도 종종 먹었다.
그중에 돈가스는 종종 생각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상대의 남다른 애정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대학원 재학 중 만났던 사람은 여름밤에 산책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무슨 계절이 가장 좋냐는 내 물음에 망설임도 없이 “여름”이라고 답하던 그 사람의 여름 같던 옆모습이 좋았다. 곧 여름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매력은 밤에 있었다. 더운 낮과 대비되는 상대적으로 선선하고 조금은 습한 대기가 여름향을 냈다. 계속 걷다 보면 미미한 땀과 바람이 만나 시원한 기분을 만들고, 멈추면 금세 땀이 차올라 우리는 괜히 오래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게 저마다의 흔적을 남겼다. 친구의 음악 장르도, 지금도 애정하는 이의 커피 취향도, 불같은 성미에도 넉살 좋게 웃던 친구의 여유도 애정하다 못해 가슴에 품어버렸다.
이왕이면 맛 좋은 커피를 마시고, 어느새 내 취향이 되어버린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날이 선 대답보다 여유로운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연주하던 뉴에이지, 중학교 때 아침방송으로 틀던 클래식도 모두 반갑다. 누군가를 통해 여름을 사랑했고, 무언가를 통해 음악을 애정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 자신을 조금 더 아끼게 되었다.
사계절 중 세 개의 계절을 기다린다. 봄이면 산뜻한 초록이, 여름이면 달큼한 밤 냄새가, 가을이면 버석한 이파리의 감촉이 기대된다. 이제 나의 남은 계절은 겨울뿐이다. 차갑지만 투명한 계절, 그 안에 숨은 따뜻함을 찾아보고 싶다. 그래서 이번엔, 겨울을 한번 사랑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