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나 결혼에 큰 관심이 없다. 누구를 만나는 것보단 혼자인 게 좋고,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내어줄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 자연스럽게 익숙하고 편한 관계를 찾는다. 서른이 넘었지만 사랑보다는 홀로 취미생활로 하루를 보내는 게 즐겁다.
첫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스무 살, 당시 친하게 지내던 무리 중에 나만 남자친구가 없어서였다. 그때 나는 친구들과 노는 걸 가장 좋아했다. 너네가 안 놀아준다면 나도 새 친구를 찾겠다는 반발심과 ‘남자친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열 번의 소개팅 끝에 만났다. 사계절을 두 번 함께했고, 세 번째 봄이 오던 해에 연애를 끝냈다. 이후에도 종종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비슷하게 만나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비슷하게 헤어지는 걸 보면서 ‘연인 관계’라는 것에 큰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별 후엔 상대, 아니면 내가 구차해졌다. 서로가 날 선 신경전을 벌이며 헤어졌다. 안전한 이별이나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이 이별과는 모순된 형용사임을 알았다.
마치 생굴을 먹고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생굴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내게 사랑이나 연애, 결혼도 그렇다. 사람들은 종종 나를 보면 연애 안 하냐고 묻는다. 관심 없다고 말하면 금방 잊고 또 물어본다. 그래서 나는 성의를 들여 대충 말한다.
“좋은 사람 있으면~”
“아우, 만나고 싶어 죽겠어.”
라며 괜히 익살을 떨어본다. 그러면 누군가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마치 생굴을 다시 만난 것처럼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또 비슷한 또래의 이성을 만나면 상대도 어째 생굴을 만난 것처럼 멈칫한다. 하나만 괜찮아도 이어지던 만남이, 이제는 수많은 방지턱 앞에서 서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비혼주의라는 말이 일상의 언어가 되기 전, 친구의 선언으로부터 그 단어를 알게 되었다. “나는 비혼주의자야.” 그 말을 시작으로 나 역시 너무 쉽게 비혼주의자라는 말을 받아들였다. 결혼을 말하는 부모님께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리며 비혼주의의 뜻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언젠가는 하겠지 싶다가도, 내심 안 하길 바랐는지 “너답게 살라”는 말을 해주셨다. 아버지는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된다”며, 내가 결혼을 안 하면 동생들도 못 하는 것이라 못 박았다. 나는 스스로의 생각이기 때문에 타인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고, 그냥 나대로 살았다. 덕분에 동생들이 작년에 줄줄이 결혼을 했고,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가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비혼주의자라는 말로 나를 가두는 것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직까지 내게 중요한 것은 자유와 편안함이다. 향후 5년까지도 가깝고 친밀한 타인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요즘은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열어두고 말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생각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