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 잃어버림

by July

언젠가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중에 버스 내 검은 전광판에 ‘하이래그’라는 붉은 글자가 계속 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하차 태그해주세요.’였다. 순간 모두가 하이래그를 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했고, 왠지 좀 숭할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숨죽여 웃었다.


새삼 내가 오랜만에 웃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바람에 낙엽만 굴러가도 배가 찢어지게 웃던 시절 뒤에는 언제부터인가 웃을 일이 줄었다. 주말에 봉사에 가서 아이들이 반갑게 다가오면 그때 잠깐 웃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남은 여섯 날을 살아간다. 거울 속 내 얼굴은 근육이 굳어 있고, 억지로 광대를 올리면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또래보다 웃음이 많았던 나는 어쩌다 웃음이 예전만큼 쉽게 나오지 않는 어른이 되었을까. 반복되는 삶은 십 대나 이십 대나 삼십 대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삶 속에서 빛나는 행복을 찾지 못한 것 같아 괜히 시무룩해진다. 경험이 쌓일수록 새로움이 주던 흥미로운 감정은 점점 낡아간다. 새로운 음식도, 관계도, 사람도, 경험도 어느 순간부터는 제한적으로 느껴진다. 그 안에서 같은 자리를 맴돌며, 한때 새로웠던 감정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아마도 내가 환경을 조금 바꾸지 않으면, 낯선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내게는 문화생활이다. 매번 다른 전시를 보며 색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이 떠올라 그것을 다시 정리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익숙한 영상 대신 새로운 장르의 영상을 보며 기분 좋은 자극을 찾고, 읽어보지 못한 책을 읽으며 새로운 감각을 깨운다. 혹은 익숙했지만 낡아버린 감정을 다시 건져 올리기도 한다.


결국 즐거움은 행복과 맞닿아 있어서, 내가 끊임없이 찾아 나서지 않으면 좀처럼 내게 와주지 않는다. 집이 좋은 나도 편안함을 벗어나는 용기를 내어 현관을 나선다. 분명 문을 나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밖으로 나오면 즐거움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늘 같은 일상처럼 보여도, 매일 달라지는 날씨를 느껴보고 좋아하는 공간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조금 달라진다.


예전의 즐거움이 뾰족하고 새로운 모양이었다면, 지금의 행복은 잔잔하고 부드럽다. 나가서 하다못해 모르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를 걸어도 그날은 특별한 날이 된다. 어쩌면 그 인연과 몇 번의 계절을 함께할 수도 있다. 이 년 전 면접장에서 만난 친구와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삶의 일부쯤은 계획하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가게 두는 것이, 뜻밖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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