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 미하엘 플레트뇨프-서울시향ㅣ차이콥스키

by Karajan

#실황중계리뷰


선우예권 & 미하엘 플레트뇨프-서울시향ㅣ글라주노프, 쇼팽 & 차이콥스키


6.30(금) / 20:00

롯데 콘서트홀


피아노/ 선우예권 (YeKwon Sunwoo)

지휘/ 미하엘 플레트뇨프 (Mikhail Pletnev)

서울시립교향악단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 프로그램 ]


A. 글라주노프ㅣ"쇼피니아나" 모음곡 발췌

A. GlazunovㅣExcerpts from "Chopiniana" Op.46


F. 쇼팽ㅣ피아노 협주곡 2번 (플레트네프 편곡)

F. ChopinㅣPiano Concerto No.2 Op.21


< Encore >

S. 라흐마니노프ㅣ첼로 소나타 3악장 (볼로도스 편곡)

S. RachmanonovㅣCello Sonata 3rd mov.


P. I. 차이콥스키ㅣ"백조의 호수" 발췌 (플레트네프 편곡)

P. I. TchaikovskyㅣExcerpts from "Swan Lake" Op.20a


#YeKwonSunwoo #MikhailPletnev

#SeoulPhilharmonicOrchestra


A. 글라주노프ㅣ"쇼피니아나" 모음곡 발췌


도입부터 두툼한 서울시향의 앙상블 사운드가 대단히 색다른 느낌을 준다. 미하엘 플레트뇨프는 정통 러시안 스타일이라기보다 사실 서유럽풍 해석에 가깝다. 그의 지휘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와 사뭇 다른 노선을 걷는 느낌이다. <글라주노프 "쇼피니아나">는 쇼팽의 작품을 오케스트레이션 한 모음곡인데 글라주노프 특유의 세련미 넘치는 러시안 스타일이 입혀지니 낭만적 애절함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플레트뇨프는 폴란드와 러시아 음악의 중심을 한층 끌어올려 북유럽 어딘가로 옮겨놓은 감성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러우면서 유려하고 복합적이며 다채롭다. 러시아의 진정한 거장 플레트뇨프가 서울시향을 마치 유럽의 오케스트라로 탈바꿈시킨 듯하다. 그가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통해 보여주던 특유의 섬세함과 유려함이 그대로 녹아든 듯하다. 쇼팽 폴로네이즈, 왈츠, 타란텔라 등 세 곡의 모음곡이 연주되었고 오늘 처음 만나는 플레트뇨프와 서울시향은 대단히 빛나는 호흡을 보여주었다.


F. 쇼팽ㅣ피아노 협주곡 2번 (플레트뇨프 편곡)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이기도 한데 도입부의 클라리넷과 현의 섬세하고 힘이 넘치는 움직임을 보니 확실히 플레트뇨프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저 약간 손을 본 것이 아니라 거의 통째로 오케스트레이션을 바꾼 것 같다. 느낌이 확연히 다르고 원곡보다 감각적이었다. 선우예권의 터치는 늘 그래왔듯 고혹적인 타건을 들려준다. 특히 쇼팽은 그의 손길에 녹아들 수밖에 없는 작품이고 그의 손끝 미세한 떨림마저 음악으로 승화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플레트뇨프가 짜놓은 동선과 흐름으로 쇼팽을 탈 폴란드화 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원곡과 이토록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는 편곡이라니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놀라움을 거듭하게 된다. 이미 다닐 트리포노프가 이 버전으로 음원을 녹음했다고 하니 그 음반에도 마음이 끌린다. 마치 러시안 행진곡을 듣는 것 같은 두텁고 강렬하게 전개되는 오케스트라는 쇼팽의 관현악적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음을 또렷이 보여줬다. 원곡이 지닌 뛰어난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있기에 오늘 이토록 훌륭한 플레트뇨프 버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새삼 오케스트레이션의 중요성을 각성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우예권은 지극히 쇼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지나치게 장중하고 두터워 과연 이런 흐름이 맞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것은 어쩌면 플레트뇨프 버전 스타일에 더욱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일 수도 있겠고 전혀 다른 그만의 쇼팽을 보여주려는 숨은 의도일 수 있겠다. 한없이 아름다운 낭만성을 보여주는 2악장이 시작되니 선우예권의 피아니즘이 더욱 빛을 발한다.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인자한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처럼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그가 변함없이 들려주던 청명한 소릿결과 꿈결 같은 손가락의 움직임, 그리고 짙은 겨울의 감성이 오늘 연주에서 오롯이 발현된 듯하다. 서유럽적인 러시안 지휘자와 선우예권의 감성적 케미는 강렬하리만치 융합적이고 이상적이었다. 쇼팽은 그 안에서 뜨거운 쇳물처럼 녹아드는 것 같았다. 3악장이 시작되니 또 다른 이야기가 흘러간다. 시쳇말로 그들 둘 다 모두 지린다. 이전 악장에서 보여준 감정보다 복합적이고 자연스러운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 속에서 정체성의 모호함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 것 같다. 뭐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선우예권과 플레트뇨프가 이루는 섬세한 화학반응은 심히 강렬하고 폭발적이다. 이는 기존의 편견을 벗어낸 기막힌 편곡의 덕분이며 두 거장이 서울시향과 함께 빚어낸 음악성의 승리이다. 피날레의 순간까지 변치 않는 호흡은 놀랍다. 실로 장엄한 코다를 선사했다. 열광하는 객석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하다. 어제 첫날 공연을 놓친 건 아무래도 두고두고 후회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 향후 플레트네프 버전의 쇼팽 연주가 더욱 잦아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라흐마니노프ㅣ첼로 소나타 3악장 (볼로도스 편곡)


앙코르로 선보인 라흐마니노프에서 선우예권이 지닌 특유의 멜랑꼴리와 격정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토록 몽환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그의 신들린 표현력은 그가 가진 독보적인 재능이리라.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그의 존재에 감사할 뿐이다. 물론 볼로도스가 편곡한 이 작품이 지닌 시적인 아름다움도 도저히 빼놓을 수 없다. 이 또한 앞서 연주된 쇼팽처럼 명곡의 재탄생이라 할 수 있겠다.


P. I. 차이콥스키ㅣ"백조의 호수" 발췌 (플레트뇨프 편곡)


오보에 독주로 시작되는 서주부는 곧바로 클라리넷이 이어받으며 애잔한 현악 앙상블이 주선율을 강렬한 필체로 그려나간다. 플레트뇨프에 의해 금관 파트가 대폭 보강됐다는 것이 초반부터 강력하게 느껴진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지만 그의 음악은 러시안적인 유럽풍의 음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콥스키는 플레트뇨프의 음악성과 일맥상통한다. 아마도 플레트뇨프는 낭만성 짙은 쇼팽과 차이콥스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의 편곡 방향도 그런 의미에서 이질적인 독특함이 존재한다. "백조의 호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정경"은 모음곡 초반에 등장하는데 배치를 바꿨다고 한다. 물론 적어도 이 곡만큼은 원곡을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부분이지만 플레트뇨프는 그의 지휘봉을 통해 그만의 해석으로 자기만의 독보적인 감성이식을 감행하는 듯했다. 그는 편곡자이기 앞서 무대 위 거대한 수술실의 카리스마 넘치는 집도의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앙상블도 이전엔 만날 수 없었던 응집력과 섬세한 탄력으로 가득하다. 이는 분명 플레트뇨프의 마술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의 독특한 음악세계는 정체성의 모호함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시공간이다. 사실 그의 모든 음반이 다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비록 실황중계를 통해서이긴 하나 펄펄 살아있는 그의 음악이 귓가에 강렬하게 꽂히는 충격은 음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 신아라 부악장의 바이올린 솔로는 살랑거리는 저녁바람처럼 부드럽고 고음부는 오늘따라 대단히 에로틱하다. 목관의 이어짐 이후 첼로 솔로와 어우러지는 현악 2중주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스치고 깊은 상처를 안긴다. 목관의 앙상블이 어둡게 이어지고 오보에가 목청을 높여 구슬프게 울부짖는다. 현과 금관의 강력한 총주가 이어지면서 격정의 선율은 빠르고 극적인 흐름으로 치닫는다. 굵은 현의 몸부림은 금관의 웅장한 포효와 장엄한 화합을 이룬다. 마지막 백조의 주제를 오보에가 노래하고 현악군이 이어받는다. 피날레를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행진이 폭발적인 금관의 격렬한 화력으로 뜨겁게 타오른다. 코다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하프 선율은 다시 거대한 총주와 만나 지크프리트 왕자와 오데트 공주의 아름다운 해피앤딩으로 화려하게 종결된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가 터져 나온다. 마치 감동적인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본 듯하다. 지나치게 격한 감정의 적나라한 표출이 아닌, 이성과 감성의 본능적인 균형을 이룬 연주였다. 실로 놀라운 연주회를 (간접)경험했다. 진정 감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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