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사연이 있다.
최근 보도된 중국으로 반도체 기술 유출 뉴스를 보면서 문득 난 15년 전 중국의 채용 공세가 생각났다.
2010년 전후, 한국 연구인력의 중국 이직이 많았다.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는 한국 기술과 인력을 빼내기 위해 중국 기업의 공격이었다. 기술 유출은 사람부터 시작하는데 중국은 'OO굴기' 이름으로 대기업 연구인력을 스카우트했다. 써치펌(일명 헤드헌팅회사)이 기술 선도기업 직원에게 접근해서 현 연봉의 3배를 제시한다는 바이럴까지 돌면서 직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S사, L사, H사 등 제조업 기반의 회사에서 인력 유출이 있었지만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위협이 아니었다. 핫한 반도체 분야가 아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직원 대부분은 개인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3년 계약으로 쓰고 버린다'라는 괴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써치펌을 동원한 중국의 채용은 회식 자리에서 오가는 안줏거리에 불과했다.
반면, 인사부서에서는 대비해야 했다. 인력 유출 방지는 인사부서에서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경쟁사로 유출되는 젊은 직원들이 경영진 초미의 관심사였다. 리텐션(퇴직 방지)제도에 중국 이직은 아주 작은 화제였다.
- OO사는 애들 키워두면 데리고 간다 말이야!
같이 일하던 임원이 늘 하던 이야기였다. 인사부는 임원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 '여러 가지' 대안과 프로세스를 만들었으나, '우는 아이 젖 준다'라는 속담은 리텐션(퇴직 방지) 프로세스에서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묵묵히 일하는 직원을 흔들기 때문에 리텐션 프로세스는 양날의 검이다. 묵묵히 일하면 손해라는 직원 인식도 위태롭지만, '우는 아이'에게 먹을 것이 생기는 일은 회사가 아닌 모든 곳에 있는 현상일 것 같다.
내가 모시던 임원은 상사에게 이렇게 '자랑' 한마디 한다.
- 제가 나가려는 핵심인재를 잡았습니다!
열정적인 인사부 직원이 리텐션 프로세스를 잘못 쓰면,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정책이라며 온몸으로 막아도, 임원은 '단기 실적' 생각에 기준을 무시하고 '모든 퇴직자'을 잡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직장인(특히 글로벌 제조업 직원)은 보고 시 이런 질문에 늘 대비해야 한다. 이 질문에 잘 대비하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고급진 정보는 회사의 시간을(시행착오) 줄여준다. 정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회사의 힘을 아낄 수 있다.
- OO 기업은 어떻게 하고 있어?
- (Global Top)회사들은 작년에 검토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 지금 경쟁 업체는 이 분야에서 뭐하고 있어? 거긴 다른 방식을 채택한 것 같던데?
경쟁사 동향은 보고서 기본이다. 경쟁사 동향이 없어도 보고받는 사람이 반드시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경쟁사 동향 질문에 보고자가 대응하기는 힘들다.
왜 그럴까?
보고 받는 사람이 정보가 더 빠르고, 정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경쟁사 동향에 관심 없을 수 있다. 지금 회사가 그렇다. 그래서 보고가 참 편하다. ㅎㅎ)
- 경쟁사는 작년에 이 방식을 채택했잖아, 지금 어때?
질문에 대답하려면, 경쟁사를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쟁사에서 이직해 온 사람이 있으면 좀 편하다. 경쟁사에서 왔다고 모든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지만, 그 회사에서 온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얻기 쉽다. 이직한 사람이 성공하느냐와 별개로 경쟁사 동향에 대해선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전 직장 동료와 걸쭉하게 술 한잔하고 '내부 조직도'를 얻어 오는 모습도 보았다. 그만큼 남이 뭘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동종업계로 이직하는 사람이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다.
중국으로 이직한 사람들이 성공했을까?
'중국은 한국에서 이직해 온 사람들을 쪽쪽 뽑아 먹고, 버린다.'라는 소문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 있었다. 대부분은 중국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악성 소문이 번졌지만, 이직한 사람 모두 실패가 아니었다. 잦은 이직이 결점이 아닌 중국 같은 노동 시장 환경에서 "Why not?" 하며, 그 사람이 '뽑아 먹을' 구석이 있다면 2~3년 채용한다. 평생 책임질 직원도 아니니까.
중국으로 이직한 사람은 3~4년 후 다른 one of Tops 기업으로 이동하고, 그다음엔 Second Tier로 내려가면서 Job hoppoing을 했었다. 그렇게 10년 정도 버틸 수 있었고, 10년 후면 한국에서도 퇴직 시기이다. 그동안 한국 급여 2~3배는 벌 수 있었다. 손해인가? 실패인가? 성장은 없지만 금전적 실패가 아니다.
중국 출장을 다녀온 직원들이 옛 회사 선배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 OOO 수석을 XX회사 미팅에 갔다가 만났어요, AA 회사에 있는 줄 알았는데. XX에 있더라구요.
- OOO수석 딸이 중국 유학 한다고 해서 중국 갔다고 했는데?
- 맞아요. 중국에서 회사 몇 번 옮겼고, 지금 XX에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 선배 10년 만에 봤어요
난 떠난 사람들의 '떠날' 결정이 모두 '합리적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근시안적인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최선의 결정이라고 믿는다. 학교에서 배운 자아실현/성장과 같은 환상만 좇을 수 없다. 냉정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직'이 실패가 아니라 적절한 '수정'이 될 수 있다. (잘못 '수정(이직)'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신중한 이직 혹은 감정적 이직으로 회사 선택 실패 사례 글을 써야겠다.)
인사 업무를 하면서 많은 퇴직자 면담을 했다. 퇴직하는 분과 교감을 나누며 친분이 두터워지기도 했었다. 회사 인사직원으로서 동료의 이직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퇴직원을 받을 때마다 그 결정을 지지하게 되었다.
'공부하겠다' '진학한다'는 직원은 대부분 경쟁사 이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거짓말하는 분의 마음도 이해한다. 이직처를 밝히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서 슬쩍 'ooo 가요' 이야기하는 직원의 비밀은 꼭 지켜주었다. 알고보면 그들은 친한 지인들에게 모두 전직 회사를 이야기했고, 이직 며칠만 지나면 어디로 갔는지 다 알려진다. 까칠하게 '면담 꼭~ 해야 해요?'하면서 입을 꾹 닫고 있다가 잠시 후 상사 욕을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하는 퇴직자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회사에서 한 사람이 떠나면... 다음 날이 그저 평범한 하루다.
반대로 퇴직자의 다음 날은 평생 기억에 남을 특별한 하루다.
나라를 바꾸는 결정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
이전 회사에 외국인들이 근무했다. 일 년에 한 번 계약 갱신하는데, 친분이 쌓이면서 이역만리 타향에서 직장 생활하는 이유를 물어보았었다. 대부분은 '돈'과 '커리어' 측면으로만 대답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이직 사유는 '가족'이었다. 정확히는 아내의 결정이었다.
그는 인도네시아 교수 출신 직원이었다. 국내 SKY 대학과 맞먹는 수준의 인도네시아 공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KAIST에 왔다가 한국 회사에 취직했다.
- 교수까지 하신 분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더 좋지 않느냐?
그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가 한국에 머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 아내가 한국에 있기를 원해!
- 왜?
- 한국은 여성이 살기에 좋은 나라야
- 한국이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는 나의 반문에 웃으면서, 인도네시아보다 한국이 여성에게 더 살기 좋은 나라 맞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였지만, 여전히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 삶의 질은 높지 않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한국에 살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연희동의 한 스타벅스에서 그를 마주쳤다. 우린 서로 가벼운 안부인사를 나눴다. 그는 작은 회사의 CTO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직 한국에 있었다. 그는 자기 삶에서 가장 큰 결정을 했다.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는 결정이다. (이 친구가 몇 년을 나와 같은 사이트에서 근무했다. 이 사람의 연봉 협상에 대해선 언젠가 브런치에서 다룰 때가 있을 것 같다. - 짧지만 재미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 속에 이직 붐이 있다.
더 좋은 회사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직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