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way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은 두 임원이 있다. 한 사람은 내가 입사할 때 면접관이었던 첫 임원이다. 다른 이는 그의 후배이고 워크홀릭의 '정수'였다. 둘은 순수하게 '일만' 하는 임원들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닮았으나 달랐다. 나의 첫 임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내가 모셨던 첫 임원 하OO은 40대에 임원이 되었다. 요즘 흔한 40대 임원이 15년 전에는 흔하지 않았었다. 당시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40대 임원 달기는 어려웠고 젊은 임원 인사는 뉴스에 날 정도로 이변이었다. 최근 젊은 조직을 지향하면서 늙은 사람(생산력 떨어진다고 몰아세우는)의 퇴직을 압박하는 '위장 전략'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임원 포지션은 조직 피라미드의 정점에 가깝다. 회사원은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고도 '운'이 좋아야만 임원으로 선발된다. IMF 이후 한국 경제가 살아날 무렵에 하OO은 임원이 되었다. 운도 좋았고, 그의 모든 인생은 회사, 회사, 회사뿐이었다.
- 속이 시꺼멓게 탈 정도로 일했어. 내가 속을 찍어보니까 위장이 시커멓더라고.
- 난 딱 먹어보면, 조미료가 들어 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알아~ 내 위장이 못 받아들이거든.
건강을 해친 하OO은 열정적으로 일했던 자기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종종 회상했고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그처럼 모든 직원이 일하기를 바랐다. 직원들이 본인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는 것을 원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파쇼'라고 했고, 일부는 일사불란한 조직이 '성공'의 기본이라고 했다.
하OO의 방에는 체중계가 있었다. 그 조직에는 300여 명 정도 근무했는데, 전 직원을 면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면담하면서 저울로 몸무게를 재고, 흡연/음주 여부를 따져 물었다.
- 난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거야. 그래서 챌리지 하는 거야.
- 직원들이 모두 성공하기를 바라.
그는 '챌린지'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에게 '챌린지'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도전하게 만드는' 정도의 뜻이다. 시쳇말로 '갈굼' '태움'의 밝은 면을 끄집어낸 미화된 단어 정도될까?
그는 비만한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면담자가 '목표'에 대한 대답을 망설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야단쳤다. '비전 없이 사는 것은 바보다.' '목표 없이 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좀 더 심한 말을 했지만... 순화해서 표현한다) 금연과 다이어트를 개인 목표로 설정했고, 연말 평가에 반영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OO은 자기 건강을 해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하면서, '아버지'처럼 직원의 건강 관리를 '챌린지' 했다.
그땐 그랬다. 가족처럼
당시 경남 어느 기업에서 회사 대표가 직원에게 '건강을 위해' 마라톤을 강요했고, 사내 마라톤 대회에서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15년~20년 전에는 기업에서는 해병대 캠프가 유행했고, 극기 훈련 캠프를 변형한 사내 교육에는 직원이 필수로 참가해야 했었다. 직원들은 본인 업무와 상관없는 행군과 잠 안 재우기를 '교육'으로 이수해야 했다. 애석하게도 직원에게 '교육' 효과는 확실했었다. 잘 포장된 공포감(불안감)은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쉽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 '글로벌 1위 하자'는 매서운 목표에 직원들은 기꺼이 희생했다.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고, 진짜 가족의 시간이 희생되었다. 저녁이 없던 삶을 사는 직원들은 회사의 '블루오션'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서점에 가면 "OO WAY" 제목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였고, 직원의 필독서였다. 도요타 생산관리 방식이 제조기업의 교과서로 여겨졌다. 6시그마가 모든 업무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숫자로 환원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일단 해보자.
-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해보자.
그도 회사 직원을 체스판에 기물처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임원실 앞에 인사부가 있었는데, 면담 중에 그가 화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하OO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은 자기 생각대로 관리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없는 직원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배'와 '선장' 비유 대신 '아버지'와 '버스' 비유를 사용했다.
- 나랑 목적지가 다르면 버스에서 내려야지.
- 난 리더이고,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야.
리더-아버지론이 그의 성공과 비례해서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을 사람들은 조용히 따랐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떨어져 나가거나 침묵을 택했다. 반면, 그의 추종자(그의 라인)가 늘어났다. 나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가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해도 묵묵히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의 시간을 희생하면서... 그땐 모두가 그랬다.
하OO는 순수한 임원이었다. 그는 일밖에 모르고, 회사라는 세상과 규칙 속에서 살았다. 본인이 하는 행동은 정말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진심을 몰라주는 직원을 미워했다. 그는 회사 보안을 이유로 건물 창문을 거의 모두 폐쇄했다. 창문을 열지 못하는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며 퇴사하는 직원이 생겼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실력 좋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중 누구와 일할지 선택한다면.
- 실력 좋은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게 좋아.
어느날... 난 하OO이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들었다. 난 그가 일을 행복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건강하지 않은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스티브잡스처럼 신비주의 의술에 빠지기도 했고, 인사부장의 분석 보고서보다 운전기사의 말을 더 신뢰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오점을 남겼지만, 회사를 향한 순수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순수함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알 수 없다.
회사에 영향력이 큰 임원 포지션은 조직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에 있다.
난 그 임원의 순수함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한 타인의 희생을 설명할 수가 없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런데도 난 하OO 임원이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난 그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 그럴 수 있지 혹은 이유가 있겠지.
오리지널 스타워즈에 갑옷만 나온 만달로리안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었다. 회사 생활도 깊이 보면 각자의 길이 있고,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으나 이해할 수는 있다. 최근 만달로리안 시리즈의 인상 깊은 대사가 있다.
모든 걸 이해하는 한마디!
- THIS IS THE WAY
몇년 전 버킷을 차버린 그가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