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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메르트리 Dec 16. 2023

왜 케첩 앞에 꼭 '토마토'를
붙이는 거야?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흘리는 말 중에 신선하고 창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어요. 아직 뇌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이라 가끔 너무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한 두달쯤 전부터 제가 기록하는 횟수가 확 줄어든 거예요.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아, 내가 요새 흘려들었나?', '그동안 귀 기울여 못 들어줬나.'하며 아차 싶었어요. (정말로 이래저래 정신이 좀 없었거든요.)

내심 좀 못 챙겨 준 것에 미안해하며 '아이들의 말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뒤, 안테나를 바짝 세워 어떤 말을 하나 유심히 들어보았죠.

그랬더니 한 가지 달라진 점을 알게 되었어요.

범이의 질문 스타일이 달라진 거예요.

원래는 엉뚱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을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왜 꼭 이래야만 해?'라는 거에 꽂힌 거 있죠. 논리를 따지기 시작한 거예요. 

자꾸 따지려 드니 제가 좀 피곤했던 거였어요. 그래서 흘려듣게 된 적도 많았고 대답을 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끊긴 적도 많았던 거지요. 

이제는 근거와 논리를 찾아가려는 물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한 층 더 성장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짜증 대신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굳이', '왜 꼭 그래야만 해?'라는 것에 꽂혀 질문을 받으면 저는 제 의견을 대답하지 않아요. 답을 말해주는 대신 함께 찾아보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려 노력하게 되었어요.




오늘은 "엄마~ 왜 꼭 케첩 앞에 '토마토'를 붙이는 거야? 안 그래도 되잖아? 케첩은 당연히 토마토로 만든 건데 왜 토마토를 굳이 써야 돼?" 라고 하더라고요. 

"응...? 그러네...?"

정말로 오뚜기 '토.마.토.' 케챂이네요!

"다른 걸로 만든 케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붙이는 거지?"

"왜 그럴까?"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짜 다른 걸로 만든 케첩이 있나?"

"케첩을 뭘로 만드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 아냐?"

"그냥 습관적으로 쓰는 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결론을 내지는 못해 인터넷 검색도 함께 해보았어요. 그런데 케첩의 유래만 잔뜩 나올 뿐 꼭 '토마토'를 붙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속 시원한 답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나름의 답을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누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아들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미술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헌혈의 집 창문에 '헌혈급구'라는 전광판이 보였어요. 

"왜 꼭 '헌혈급구'라고 쓰는 거야? 다른 말을 써도 되잖아?"

"그럼 다른 좋은 말이 있어?"

"여기 와서 헌혈하세요~ 좋아요~~"

"에이, 저기 네 글자로 해야 하는데? 네 글자로 만들어봐."

"돈줍니다 어때?" 

"그래, 그러면 사람들 많이 오긴 하겠네."


아이들이 말꼬리를 잡고 툴툴대는 듯 보여도 실은 생각이 깊어지고 사고 방식이 한 층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중이랍니다. "왜 그럴까?"라고 되물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생각은 깊어지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어요. 이제는 까칠한 질문도 반갑게 맞이해줘 봅시다. 

그나저나 정말 케첩은 왜 토마토케첩인지 아시는 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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