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한동안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이었다.

요즘은 뜸해진 것 같은데 최근 내 일상이 소확행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오전에 아내와 한강에 나가 러닝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한강 위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수다를 떨다 집으로 돌아와 함께 샤워를 한 후 아내가 만든 시원한 열무 비빔국수를 먹었다.

이 루틴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어서 더위에 힘들어도 자꾸 한강에 나가게 되는 것 같다.


최근 아내 일을 마치면 함께 동네 밤산책을 나간다. 덥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도산공원 맞은편 새로 생긴

대형 배스킨라빈스를 향한다. 손을 잡고 걷다가 더위에 지칠 때쯤 시원한 매장에 들어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열대야 때문인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젊은이들과 관광객들로 붐벼 여행지에 온 것도 같다. 이것도 한 여름밤 작지만 빼놓을 수 없는 행사로 자리 잡게 될 것 같다.

백수가 뭐 대단한 일은 없겠지만 하루하루 이런 소확행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큰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아내와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어젯밤 시킨 김밥 재료들이 새벽배송으로 왔는데 정작 김이 오질 않아 기다리고 있다. 오전에 함께 강남문화원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가 내가 오후에 친구들 모임이 있다고 하니

내일 가자고 한다. 언제나 모든 판단의 기준을 남편으로 하는 아내와 사는 내 팔자가 상팔자임에 틀림없다.

큰 딸은 졸업 논문 기간이라며 오늘도 아침 일찍 나갔고, 막내딸은 이번 학기도 성적이 잘 나왔다고 한다.

모두들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기도 하다.


이제는 뭐든 보이는 대로 이력서를 내보지만 이상하리만큼 연락이 오질 않는다.

서류 경쟁률도 만만치는 않지만 단순 노무직으로 채용하기에도 애매한 나이와 경력인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아직 절실하게 일자리를 찾고 있지 않고 그것이 정확히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 이 황금 같은 시간들을 더 감사하며 기뻐하는 일이다.

인생 중년에 주어진 특권이라 믿으며 좀 더 열심히 소확행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