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어제는 경기고등학교에 가서 주택관리사 시험을 보았다.
사실 2개월 정도 공부하고 마지막 1개월은 거의 공부하지 않은 상태라 시험장에 가는 것조차 민망했다.
이미 접수도 해놓았고 시험장이 내가 졸업한 경기고등학교라 호기심에 아침 일찍 아내와 출발했다.
시험장 교실을 확인하고 가보니 3학년 때 다녔던 바로 옆반이어서 시험도 잊고 옛 추억이 올라왔다.
천장 에어컨, 움직이는 칠판, 책걸상 등을 보면서 40년 후에 와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나고 후문 쪽으로 걸어오는데 도서관 옆 나무아래 쭈그려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전교 꼴등에서 2등을 하기도 하며 미친 화가처럼 그림만 그리고 다녔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운동장 돌멩이를 발로 차서 집까지 몰고 온 기억도 떠올랐다. 머리는 감지를 않아 떡진
까치머리에 3년 내내 군복바지를 입고 다녔다. 졸업 사진에는 흰색 긴팔티에 그림을 그리다 입은 채로
그려 넣은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교정 모퉁이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하는 내 모습들이 스크린샷처럼 멈춰져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안 해서인지 시험장이 된 고등학교에서 사춘기 추억들이 밀려왔다.
그 당시 수학 공부 하는 아이들을 속으로 한심하다고 느꼈던 것이, 이번 시험의 발목을 잡았다.
회계원리 과목의 80%가 계산 문제여서, 학력고사 수학 8점의 트라우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신기한 건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고도 잘 살아왔고, 시험도 포기했지만 중년엔 별일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 혼란과 방황 속에서도 이만큼 살아왔다면, 지금의 낙담과 불안은 배부른 아우성인지도 모른다.
주택관리사 도전 덕에 그 옛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님이 되려 했던 사춘기 나를 또 한번 만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모든 성공과 행운은 그 이전에 겪어 낸 고통과 인내의 등가물에 불과한 것 같다.
오늘 내 모습이 실망스러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나를 만날수만 있다면 다 괜찮을거라며 꼭 껴안아 주고 싶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