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오늘 오전 아내와 한강으로 드라이브를 하다 옆에 앉은 아내의 하얀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았다.

잠시 가만있는가 싶더니 이내 손을 치우라 한다. 아직도 연애할 때처럼 이렇게 사랑하니 얼마나 좋으냐며

겸연쩍은 변명을 한다. 이럴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레퍼토리가 나온다.

"어휴, 그게 사랑이야.. 사심이지" 집에서도 내가 다가가면 항상 나보고 사심쟁이라며 도망간다.

아내의 말에 뭐라 할 말을 잃는다. 나도 사랑인지 사심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아내를 사랑할 때 만 사심이 작동된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신기하리만큼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널 사랑하니까 만지고 싶은 거라며 이 나이에 무슨 사심이냐며 항변해 보아도

소용없다. 당신은 나 아닌 어떤 여자가 앉아 있어도 마찬가지라고 하면 대꾸가 궁색해진다.

왠지 그럴 것도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남자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어쩌냐며 급기야 하나님 핑계를

대기도 한다. 뭐가 사랑이고 사심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아내의 이런 반응 때문에 내가 아직까지 사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 나이는 성욕보다는 본능에 의한 치근덕거림이 대부분이다. 마치 총알 없는 권총을 가지고 상대를 위협

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아직 남자로서 죽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욕구인지도 모른다.

아내의 이런 소녀 같은 반응은 항상 나를 왕성한 수컷으로 인정해 주는 것만 같다.

점점 더 위축되고 자격지심만 커지고 있는 중년 백수에겐 더 이상의 위로가 없다.


어제 아내와 일타맘이란 새 프로를 보면서 당신이 저기에 나가야 한다며 한껏 치켜세웠다.

하지만 아내는 일타맘 보단 일타와이프라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 교육엔 TV 속 일타맘들처럼 대단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와 보니 아이들 명문대 합격의 기쁨은 길어야 이삼 년이다.

그 기쁨들이 태풍처럼 지나가고 나면 결국 남는 건 쓸쓸한 중년 부부의 노후 생활 걱정들이다.

변함없이 나에게 용기를 주는 건 언제나 나를 사심 나게 만드는 일타 와이프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