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월이 간다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오전에 막내를 정류장에 내려주고 한강공원을 뛰었다. 점심 때는 어머님이 주신 수육을 삶고, 아내 미용실을 기다렸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왔다. 요즘은 러닝 하기 좋아 오전이나 해질녘에 나가 뛰던지, 학동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문화원에서 책을 읽고 온다. 이번주는 LG 코리안시리즈 경기까지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

어제 큰 딸은 잠실 야구장에 가서 아빠와 함께 입자며 LG유광잠바를 사 왔고, 경기장 대형스크린을 보면서

응원을 하고 돌아왔다. 내 나이에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글을 써보니 새삼 느낀다.


카톡방에서는 친구들이 만나자고 했지만, 엘지한화 4차전을 보아야 된다고 다음 주로 미뤘다.

내일 새벽에 아내가 동역교회 전도사역을 2박 3일 떠난다. 교구장님께서 엊그제 전화로 내년 전도팀장을

맡아보라는 말씀에 손사래를 쳐야 했다. 저 자신도 아직 전도를 못했는데, 누구를 전도하겠냐며 불편한

사양을 했다. 아내는 안동에 있는 작은 교회 마을을 섬기기 위해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아내보고 형식적인 그런 전도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니, 그 행위를 하는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나이에도 피해의식에 하기 싫은 일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아내는 항상 내 눈치를

보면서 주변을 위한 배려와 봉사를 한다. 타인을 위한 희생보다 나를 이해시키는 게 더 힘들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있으면, 내가 항상 더 좋은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내가 사람 대우를 받고 사는 것은, 아마도 아내의 그런 행동들 때문일 것이다. 저 여자의 남편이라면,

뭔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를 하는 것도 같다.


왠지 내년에는 나도 떠밀려 가야 하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아직도 남이 시켜 억지로 해야하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이면 성경 3 회독이고, 제자 훈련도 받다 보면 믿음이 또 한 뼘 자라겠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효용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일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용한 일일지라도 이제는 또 다른 삶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