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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구경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엊그제 아이들이 보내온 가을 풍경을 보니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제 오전 아내와 아이를 신촌에 내려주고 서촌으로 향했다. 사실 약속들이 있었으나 모두 취소를 했다.

새벽잠을 오랜만에 잘 자서 그런지 사물들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공기는 시원하고 햇살따뜻해, 단풍

인파들이 경복궁 돌담길에 모여들고 있었다. 여름에 보았던 고궁박물관 단풍나무를 찾아가 보니,

이미 가을단풍 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젊을 땐 연세 드신 분들이 단풍구경을 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꽃도 아닌 단풍이 뭐가 이쁘다고 하는 걸까 신기했다. 언제부터인가 가을 단풍이 이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왠지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점점 볼 시간은 줄어들고, 우리 마음에 그만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살기 바쁠 때는 주변 사물들과 계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은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항상 만차였던 공영주차장에 차 한 대가 빠져나오면서 편하게 무료주차까지 했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들도 이뻤지만, 고궁 뒤뜰 단풍나무가 예상보다도 더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궁금했던 사랑방칼국수 한 그릇도 기대 이상이었고, 아키비스트 아인슈페너 역시 변함이 없었다.

양쪽 집안 부동산 문제들이, 오늘 아침 전화로 조금씩 가닥을 잡아가 더 홀가분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쓸 수 있음은 큰 축복이란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조금만 잠을 잘 못 잤다던지, 신경 쓸 일들이

있을 때에는 엄두가 나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브런치 작가님들은, 평균 이상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젊어서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 글을 썼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여유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 같다.

그림은 글보다 한 단계 위인 것 같아, 아직 그림에 전념하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은 게 현실이다.

올 연말과 내년 초까지 본가와 처가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풀려 나갈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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