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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과 맑음이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기어이 올해도 어머님은 김장을 하셨다. 작년에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하셨기에, 끝까지 성화를 부렸지만

어머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어제 아침 일찍 아내와 어머님 아파트 노인정에 갔다.

어머님이 노인정 회장이셔서, 평일엔 사람이 없어 그곳에서 김장을 하신다. 며칠 전 해남배추를 사놓으시고, 하루 전 어머님과 남성역에 가서 수육과 젓갈들을 사 왔다. 아침에 가보니 이미 양념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배추도 절여 놓으셨다. 아내가 어머님과 속을 넣고, 내가 뒷 청소를 한 후 김치통에 담아 왔다.


매년 김장을 할 때마다 관리실에 수육과 겉절이, 밥까지 갖다 주신다. 어제는 아파트 소독하시는 아주머님 한분이 노인정에 들어와 죄송하다며 짐을 풀어놓으셨다. 잠시 서로 불편했는데, 아내가 자연스럽게 겉절이에 굴을 넣어 맛보시라며 직접 입에 넣어 드렸다. 순간 어색한 공기가 사라지고 뻘쭘하던 아주머님 표정이 밝아지셨다. 간이 딱 맞아 맛있다고 품평까지 해주시며 즐겁게 참견을 하시다 나가셨다.

나는 엄두도 못 내는 아내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오늘은 큰 아이 친구가 홍대에서 졸업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함께 구경을 갔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두 딸들을

데리고 홍대 캠퍼스를 구경하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큰 딸을 기다렸다 함께 이대로 가서 막내를 태우고 미사지구에 사는 큰 처형 집으로 향했다. 처형네가 일본 여행을 간 동안 조카가 키우는 고양이를 이틀간 아이들이 봐주기로 한 것이다.

맑음이란 이름의 고양이인데, 아이들도 가끔 사촌 언니집에 놀러 가서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도 집에 올라가서 잠깐 보았는데, 개냥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나에게도 다가와 발에 얼굴을 비비는데, 신기하기도 했지만 왜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다가와 호감을 표시하면 그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사랑에 목말라 있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면 한없는 애정과 관심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머님 김장에 달려간 막내며느리가, 우리에겐 맑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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