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쓰는 행위를 참 좋아해서. 내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고 쓴다. 그렇게 일기도 몇 년째, 블로그도 몇 년째. 특히 생각이 많아지면 그 행위에 박차를 가해서 페이지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모든 감정과 생각을 활자로 쏟아낸다. 그러나 이렇게 쏟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제법 괜찮은 정도. 그마저도 힘이 없어 아예 종이를 외면할 때도 있다.
감정의 고조를 1부터 10까지로 나눈다. 일기장을 펼쳐보면 8까지는 상세히 적혀 있는데 그 이상은 아예 텅 비어있다. 잊고 싶어 스스로 블랙아웃을 시키는 셈이다. 내 힘든 상황을 하나하나 낱낱이 쓰고 싶지 않은 거다. 그걸 보면 또 한 번 상처받으니까. 아니지, 두 번 상처받는다. 쓸 때 한 번, 다시 읽을 때 한 번. 그래서 너무 날 것은 적지 않는다. 다시 읽었을 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남겨둔다.
3월이 되면서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다. 세상은 다시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사람들은 움츠린 몸을 펴고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외투가 얇아지는 만큼 마음의 껍질도 얇아진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찔리고 떨린다. 아직은 괜찮다며 다독인 시간의 끝이 벌써 다가온다. 이젠 정말 걸음을 떼야 할 때. 나이가 들고 짊어져야 할 무게가 늘어간다. 아직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빚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한 몸을 건사하기 위해 제법 품이 든다. 결론은 이 사회에서 일 인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이런저런 걱정들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스스로가 참 안됐다. 안쓰럽고, 짠하고, 답답하고, 쓸쓸하고, 슬프다. 어차피 겪어야 될 것들을 사서 걱정하고 있는 게 참 그렇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단어가 매일 돌아가면서 어깨를 짓누르는데 최근에는 안쓰럽다가 자주 등장한다. 사실 저 단어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여서 그런 거 같기도.
안쓰러운 감정 기저엔 애정이 깔려 있다. 잘 됐으면 좋겠는 마음에 안쓰러운 감정이 드는 거니까. 제법 온도가 높은 단어다. 그래서 난 평소에도 불쌍하다는 말보다 안쓰럽다는 말을 쓴다. 누가 누굴 불쌍해 해. 그건 기준도 모호하고 너무 주제넘는 단어니까.
내 스스로가 너무 안쓰러운 요즘이다. 누구보다도 나의 행복을 바라고 안정을 바라고 잘 되길 바라는 게 나 자신이다. 내가 미치도록 안쓰러울 때가 있는데 그래도 안쓰러워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바라봐서 참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사랑이 메말라 갈 때 강박적으로 채워 넣는 행위를 한다.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보거나 사람 구경을 한다. 세상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사랑들을 하나씩 주워 텅 빈 내 맘의 곳간을 다시 채운다.
그러니 본인을 안쓰러워했으면 한다. 너무 미워하지 말고 싫어하지 말고. 자신에게만큼은 좀 따뜻하게 대하길 바란다. 결국 나를 돌보는 건 나니까. 나의 온도를 높여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유해진다. 가장 중요한 건 뭐가 됐던 자신이다.
3월은 모든 게 시작되는 때이니까. 나처럼 힘들어할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써 본 글이다. 사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너무 주눅 들지 말라고. 주눅 들어 봤자 어깨만 굽더라... 여기서 더 굽으면 옷걸이 된다. 다들 어깨 한 번 쫙쫙 펴고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가지자. 제발 나 말이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