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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스빈 Aug 10. 2024

51알의 커피가 준 행복!

아내의 생일에 맞춰 준비한 특별한 커피한잔!



아주 오래전 10년도 지난 어느 겨울날 덕수궁 돌담길에서 커피 축제가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커피 관련 상점들을 배회하다가 커피나무를 발견했었다.

그 길로 한그루의 커피나무를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식물 키우기엔 잼병인 나는 그래도 나름 커피나무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인지 팔팔하던 나뭇잎이 맥없이 허물 어질 때쯤이면 아차 싶어 물을 흠뻑 주고 또 한참을 잊고 있다가 또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물을 주면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커피나무는  용케도 버텨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하얀색 꽃을 피우고 체리 열매도 맺어주었다. 커피나무에 쏟은 정성에 비하면 과분한 노릇이지만 꽃이 피면 재스민향 가득한 하얀 꽃잎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마주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푸르디푸른 애기 열매가 맺히면 새 생명이 탄생한냥 기쁘게 바라보았었다.  

그렇게 몇 개의 열매마저도 감사해했던 시절들이 해를 더해가며 조금씩 더 많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 했다

참으로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이 기특한 녀석들을 커피로써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기로 다짐했다.

빨갛게 익은 열매를 입으로 가져다가 과육을 발라내고 점액질 가득한 씨앗을 골라내고 베란다 햇빛에 말리기를 한 달여!

피치먼트상태의 씨앗에서 알맹이를 골라내니 피베리 두 녀석을 제외하곤 모두 반듯하게 한 씨앗 속에 두 녀석의 생두가 마주 보며 새초롬히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한 알 한 알 세어보니 총 51알의 생두가 모여들었다.


유명한 커피 애호가중의 한 명이었던 베토벤은 매일 아침 60알의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고 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9알이 모자라는 개수이긴 하지만 한잔의 커피를 만들어내기엔 부족할지언정 의미 있는 ‘메이드인 우리 집 커피’가 되리라 생각했다.


마침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는 때라 나는 51알의 생두로 로스팅을 해서 아내를 위한 단 한잔의 커피를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아내가 없는 틈을타 주방 베란다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가져다 놓고 로스팅 수망에 51알의 생두를 넣고 조심스레 로스팅을 하였다. 실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오감을 통틀어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생두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얼마지 않아 따다 다닥 소리를 내며 1차 팝핑이 일어나며 뽀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커피마니아인 아내는 매일 3잔 이상의 커피를 밥 먹기보다 더 즐기는 사람이라 우리 집 커피가 안겨줄 즐거움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메에드인 우리집 커피원두들

생일날 아침 딸아이와 함께 미역국을  끓이고 팥을 곁들인 찹쌀에 소금 간을 해서 밥을 안치고 생선을 굽고 꼴뚜기 숙회를 만들고 아내가 좋아하는 연어회를 준비해서 한상 생일상을 차려놓고 나니 나도 딸아이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생일상을 받은 아내도 행복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해주었다.

34년간 매일아침 가족을 위해 아침밥을 해온 아내의 노고에 비하면 하루의 아침이 미약할지라도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함께한 아침생일상은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식사 후 당연한 아침 드립커피시간에 난 어제 볶은 우리 집 커피를 짠! 하고 보여주며 오늘의 특별한 아침커피를 소개했다.

한 달 이상 말린 커피를 언제 맛볼 수 있냐며 재촉하던 아내는 얼굴 가득 행복이 묻어났다.

이제 드디어 우리 집 커피를 대면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넉넉한 양의 원두가 아니기에 충분히 커피의 향과 맛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우리 집 거실에서 자란 커피나무로부터 수확한 커피 한잔은 그 어떤 커피보다 의미 있는 커피였다.

우리 가족에게 단 한잔의 커피만 허락한 야속한 커피나무지만 내년엔 더 많은 수확의 기쁨을 생각하며 함께 마실 수 있는 한잔의 커피를 다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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