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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Jul 30. 2024

애교심과 분파주의

애교심이 특심일 때

Intro


간혹 가다가 애교심이 특심인 사람을 만난다. 물론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특히나 교회의 중직자라면, 자기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 극명한 예 중 하나가 아래의 링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래 링크를 보면 어떤 장로가 주일학교에서도 가르치는 기본을 모르고 "우리 교회만 맞고 신학교는 다 틀렸으며 한국 교회는 엉망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애교심이 특심일 때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사람들을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서머나 교회의 김성수 목사도 그렇고, ㅂ과ㅈㄹ교회 ㄱㅁㅈ 목사도 그렇다. 심지어 총신대 신대원 동아리 중 하나인 ㅇㅎ 목사의 ㅇㄴㅌㄹ 라고 하는 동아리도 포함된다. 많은 사역자들이 이 단체들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분파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분파주의는 많은 이단들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 교회에만 진리가 있고, 다른 교회에는 진리가 없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아무리 바른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우리 교회에만 진리가 있다"라고 한다면 주의를 해야 한다.


분파주의 성향이 짙으면, 타 교단이나 심지어는 같은 교단 타 교회의 목사조차 절대로 설교단에 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교단, 우리 교회 외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 있는 다양한 극단적 루터파 교회들과 재세례파 교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파주의가 위험한 이유


분파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그 예를 들자면, KJV만 영감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무리들이 있다. 우리에게만 바른 성경이 있다는 무식한 주장이다. 이 주장의 맹점은, "다른 교회에는 오염된 성경만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우리에게만 진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없다는 비이성적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 어떻게든 다른 교회를 내려치고, 우리 교회만 올려치려는 모습은 교만한 데다가 교회에 급을 나누는 비성경적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오염된 성경이 존재하는 다른 교회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자기들끼리만 소통이 가능썩고 썩는 고인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식 교단 안에도 음모론을 추종하는 많은 목사들이 존재한다. 이 교회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 교회만 맞고 다른 교회는 오염되었다면 점점 외따로 떨어져 고여가는 것이다.





입으로는 복음을 가르치는 분파주의들


복음을 철저히 가르친다는 교회와 단체들도 여기서 벗어가지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교회에만 진리가 있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1) 입으로는 복음을 말하지만 율법주의나 영지주의에 빠지게 된다. 사실 분파주의라는 게 그렇다. 다른 교회와 차별점을 말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ㅇㅎ 목사의 ㅇㄴㅌㄹ와 서머나교회를 김성수 목사를 보면,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영지주의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 교회의 99% 성도들이 복음을 모르며,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ㅇㄴㅌㄹ 출신 목사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 사실을 더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ㅇㅎ 목사의 교회에 들어간 사역자들의 말을 빌리면, 자기네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네 교회에만 바른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회 성도들의 99%는 알 수 없는 복음이라니, 그야말로 완벽한 영지주의 아닌가?


2) 자교회 이기주의가 심해진다. ㅂ과ㅈㄹ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입으로는 매우 은혜롭게 말한다. 우리 교회는 복음에 대해 잘 가르친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간다. 다른 교회는 복음을 잘 가르치지 않으니, 다른 교회 다니느니 우리 교회 나와야 한다는 거다. 결국 다른 교회에서 청년을 빼오는 경지까지 이른다.


나는 신천지에서 교회에 침투에 성도 빼오는 이야기 들었을 때는 사이비니가 그럴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멀쩡한 교단 이름을 달고 다른 교회에서 청년들을 빼오는 교회가 있다는 소리에 의아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분파주의에 빠지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만 진리가 있고 다른 교회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른 진리를 주려면 다른 교회에서 사람들을 빼와야 한다. 이 얼마나 이단과 똑같은 모습이란 말인가?




리더가 문제


맨 위에 있는 장로도 그렇고 다양한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리더가 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애교심을 고취시키는 거야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분파주의를 조장한다면?


물론 무지한 구성원들은 애교심과 분파주의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마치 영지주의처럼 "우리 교회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무지하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구성원들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리더가 분파주의의 조짐을 모를 수 있을까? 맨 위에 나오는 장로만 해도 페북에 한국 교회는 틀렸으며 신학교는 잘못 가르친다는 분파주의적 글을 양산해내고 있으며, 또한 ㅂ과ㅈㄹ교회처럼 다른 교회에서 성도를 빼온다는 건 이단이나 할 짓인데 그 사실을 리더가 모를 수 있을까? 안다면, 이건 애교심 수준이 아니라 분파주의 조짐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나는 잘 가르쳤는데 배우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멍청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 가르침에는 분파주의적 요소가 없다는 거다. 아니, 자기 말 듣고 분파주의로 바뀌어 가는 걸 들으면 얼른 교정할 생각을 해야지 "나는 문제 없다"라고 주장하다니. 이게 얼마나 "나는 맞고 남은 틀리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한지 알겠는가? (그리고 이런 생각이 심해지면 분파주의가 된다.)





바른 애교심


그렇다면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 사이에 차별점은 없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 교회를 다른 교회보다 더 사랑하는 게 불가능한가?


사실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신앙과 신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신앙과 신념을 구분하여, 신앙(본질)에는 일치를 이루지만, 신념(비본질)에는 서로 포용할 수 있을 때 교단주의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신앙과 신념을 구분하지 못하고, 우리 교회에만 진리가 있다고 할 때 분파주의에 빠진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각 교단마다 신념이 존재한다. 이런 신념을 무시하고 신앙만 이야기한다면 C. 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기독교의 현관에만 들어간 사람이 된다. 기독교의 깊이 있는 정수를 깨닫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기독교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마치 한식, 양식, 일식, 중식을 무시하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신념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어떤 신념은 다른 신념보다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신념은 다른 신념보다 성경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신념을 강조하는 것은 유익하다.


음식을 예를 들어, 더 건강한 식단에 대한 신념이 존재한다. 채식주의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고, 탄수화물을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설탕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우유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더 나은 방식이다"라고 주장하는 수준이라면 매우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설탕을 먹는다고 총으로 쏴 죽인다거나, 육식을 한다고 식당의 문을 막는다면 이것은 그 선을 넘은 것이다. 누군가 독극물이나 살아있는 사람을 먹는다고 했을 때야 어떻게든 막을 수 있지만, 설탕 먹인다고 쏴죽인다거나 육식을 못하게 막는다면 그것은 신념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으로 바뀐 것이다.


교단이라는 것이 이것과 같다. "우리의 가르침이 다른 교단이나 교회보다 성경적이다"라고 믿는 것은 유익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만 진리가 있고 다른 교회에는 복음과 진리가 없다. 다른 교회 가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해롭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보다 성경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가 보다 성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있는 개혁교회들 사이에서 개혁주의 전통을 이은 예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나는 미국 개혁주의 교단에서 개혁주의 예배를 경험했으며, 초대교회 예배 전통을 복원시킨 것으로 개혁주의 교단 내에서 유명했던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초대교회 예배 전통을 복원시킨 유명한 교수님과 식사를 하기도 했고, 같은 교회에 다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에게 예배학에 대해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담임 목회자가 된다면 개혁주의 전통과 초대교회 예배 전통이 살아있는, 한국 교회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특별한 예배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것은 분명 다른 교회와는 차별되는 특수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예배 방식만 맞고 다른 교회 예배는 틀렸다거나, 우리에게만 참된 예배 예전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게 좀더 초대교회 예배와 개혁주의 예배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에 유일하게 옳은 예배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거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초대교회 예배를 완전히 복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성경 속에 등장하는 초대교회 예배와 가까운 주후 300년대의 예배를 어느 정도 복원하는 것이야 가능하다. 즉, 이게 좀더 성경적 예배 모형에 가깝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것만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거다.


즉, "우리 교회가 좀더 성경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하는 목사라면 "나는 이게 좀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못한다는 것은, 그냥 다른 사람의 목회와 설교 방식을 베끼는 수준 밖에는 안 되니 말이다.


내가 성경을 읽고, 다양한 책들을 읽고, 다양한 방식을 읽고 그 중에서 "이게 좀더 성경적인 거 같아"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예배 순서 중에서 선택할 때에조차도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리하며


우리는 애교심과 분파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애교심과 분파주의를 나누는 기준점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고대 도나티스트 분파주의 이단처럼 "우리 교회에만 진리와 구원이 있고, 우리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이단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물론, 분파주의를 극복했다면 애교심은 매우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권장할 법하다. 선한 경쟁이라고 해야 할까? 서로가 하나임을 인정하는 한에서 각자의 개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같은 몸이라도 손이 다르고 발이 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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