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창조 가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일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질문은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정점을 찍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나 영화 <트루먼 쇼>를 통해서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현실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만들기는 했다.
이에 대해서 관념론이나 철학사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우주 혹은 현실 세계가 사실은 시뮬레이션(simulation)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철학적, 기술적 근거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것을 믿을지 말지는 각자의 자유이다. 하지만 해당 내용에 대해 궁금하다면 아래의 링크들을 참조하도록 하자.
영상들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위의 영상들이 말하는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세상도 픽셀처럼 구성되어 있다 (관련 이론: 플랑크 길이, 양자 중첩)
우리가 보는 디지털 화면은 아주 작은 점들, 즉 픽셀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적으로도 우주에는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시간’이라는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단위가 존재한다.
이는 우주 역시 연속적이지 않고, 디지털처럼 잘게 쪼개진 불연속적인 구조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이 세계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속도가 존재한다 (관련 이론: 상대성 이론, 광속 제한)
현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는 빛의 속도이며, 이를 넘는 속도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속도의 한계는, 게임 내에서 캐릭터의 이동 속도를 제한하여 부하를 줄이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시뮬레이션의 성능 제한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3. 관찰할 때만 ‘존재’가 확정된다 (관련 이론: 양자역학, 불확정성 원리, 이중 슬릿 실험)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파동 상태로 존재하고, 관측하는 순간 입자로서 위치와 속도가 확정된다.
이는 마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보는 방향만 렌더링되고, 보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리되는 방식과 유사하다.
불확정성 원리와 이중 슬릿 실험은 이러한 주장을 대표적으로 뒷받침한다.
4. 설계된 것 같은 구조와 패턴들 (관련 이론: 지적 설계론, 우주-뇌 구조 유사성)
인간의 뇌신경망 구조와 우주의 은하 분포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복잡한 유기체나 박테리오파지 등의 생물학적 구조 또한 지나치게 정교하여 자연 발생이라기보다는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지능적 존재에 의해 구성된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5. 인간 스스로 현실 같은 가상 세계를 만들고 있다 (관련 이론: 시뮬레이션 가설 / Simulation Hypothesis)
현재의 인류는 VR, AI, 고해상도 3D 환경 등을 통해 점점 더 현실에 가까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래에는 현실과 구분 불가능한 시뮬레이션 세계가 충분히 가능해지며,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그런 시뮬레이션 안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6. 세상은 ‘필요할 때만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관련 개념: 렌더링 최적화, 시뮬레이션 효율화 이론)
게임은 시스템 자원을 아끼기 위해 사용자가 보는 화면만 렌더링하고, 보지 않는 영역은 생략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우리가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유지되고, 보는 순간만 물리적 특성이 확정되는 구조는 렌더링 최적화의 시뮬레이션적 해석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뭐라고 말할까?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창세기를 시뮬레이션 이론으로 생각해왔다. 물론 아래의 링크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하나의 사고 실험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경이 알려준 곳까지만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외의 이야기는 전부 사람의 생각과 이론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창조과학에 대해 배우면서 불편한 마음을 한 켠에 가지고 있었다. 창조과학 외의 모든 생각은 틀린 것이며, 이단이며, 성경을 벗어났다는 주장이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경 해석을 무조건 "직설법"으로 해석해야만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이 들곤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깊이는 없었으나) 관념론에 심취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또는 아마 <매트릭스>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들이 창조를 시뮬레이션 창조처럼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화론을 공부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진화론이 맞아도 그만, 창조과학이 맞아도 그만이었다. 왜냐면 창세기 1-2장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두 가지 창조 가설 때문이었다. 하나는 위의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창조 관람회이다. 다른 하나는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시뮬레이션 창조 가설이다.
참고로, 주의해야 할 점은, 나는 시뮬레이션 창조를 신봉하고 있지 않다. 이게 틀려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나에게는 이게 창조 가설에 대한 다양한 사고 실험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다. 창조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심심풀이로 생각해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가설을 세울 수 있지만, 그것만 유일한 진리라고 믿을 이유는 없었다. 왜냐면,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았으니까! 창조 관람회가 맞을 수도 있고 창조 과학이 맞을 수도 있으며, 유신 진화론이 맞을 수도 있다.
원래는 시뮬레이션 창조 가설을 가지고 소설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소설을 쓸 시간이 없다 보니 이게 10년은 커녕 20년이 넘어가 버리는 거다. 그래서 소설 쓸 생각은 포기하고 이렇게 브런치에나 올리기로 했다. (여기서 내가 시뮬레이션 창조 가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장르 소설 수준으로 생각한다. 잘하면 맞을 수도 있고, 아니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거다.)
시뮬레이션 창조 가설의 시간은 이렇다. 먼저 창세기 1장 1-2절을 포멧하기 전 컴퓨터 상태로 본다.
[창1:1-2]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포멧되지 않은 컴퓨터 디스크를 구매했다(아니면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이 상태가 혼돈하고(포멧되지 않았고), 공허하며(포멧도 되기 전인지라 그 안에 아무런 정보 또는 data가 없으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포멧되기 전인지라 정보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 3-5절로 가보자.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신다.
[창1:3-5]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나는 이것을 1. 컴퓨터 언어인 0(어둠)과 1(빛)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상상해보곤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시뮬레이션 세계의 정보(data)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처음으로 컴퓨터 언어(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가 만들어졌든, 정보가 기반인 시뮬레이션 세상이 만들어졌든, 그런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참고로 인간의 DNA 정보를 보고, 결국 인간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정보 조각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생각은 위의 가설을 강화해준다. (물론 증명해주지는 못한다._
또는 2. 포멧되지 않은 디스크를 이제 처음으로 포멧했다고 생각해 보았다. 정보를 넣을 수 있도록 포멧이 이루어진 상태가 바로 빛과 어둠이 나뉘어진 상태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첫째 날>이라는 건 컴퓨터 안에 있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컴퓨터 바깥에 있는 사람 중심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넷째 날에 낮과 밤이 처음 나오는데 이것이 문제가 안 된다. 창조는 창조자 중심으로 7일에 걸쳐서 만들어진 거지, 창조물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또 재미있다.
[창1:6-8]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중심으로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을 나누신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궁창 아래의 물을 컴퓨터 언어, 궁창 위의 물을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는 윈도우로 생각하곤 했다. (의식의 세상과 무의식의 세상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컴퓨터 화면은 동영상이 나오거나 워드 프로세서가 열리거나 그러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로는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정보(0과 1)가 연산되고 있다. 즉, 실제로는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리고 9절부터 13절까지 보도록 하자.
[창1:9-13]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뭍>을 각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스마트폰으로 말하자면, 궁창 위의 물을 스마트폰의 os인 ios나 안드로이드이다. 그리고 ios와 안드로이드에 깔리는 어플이 바로 땅인 것이다. 즉, 10절에 <땅>의 등장은 Earth라고 불리는 어플이나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처음으로 깔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시뮬레이션 창조 가설에 진화론이나 창조 과학이 크게 타격을 주지 못하게 된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이후 창조의 순서는 개발자들이 각 요소를 언제 만들었는가이지, 이것이 언제 땅에 등장했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5절에 나오는 광명체가 땅을 비추는데, 처음 <지구 시뮬레이션 어플> 개발 당시에는 태양은 그저 지구 주위를 도는 빛으로 있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태양계가 렌더링되는 것이다.
물론 이때 지구의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진화론이 처음 나오는 역사가 먼저 쓰여졌다가, 그 이후에 생물의 진화를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재미있게 해왔던 사고 실험은 풀과 씨 맺는 채소, 넷째 날의 각 광명체들, 낮과 밤의 의미 등이 더 있다. 사고 실험이다 보니 위에서는 윗물과 아랫물을 os와 그 뒤에서 돌아가는 정보 처리 과정으로 설명했는데, 낮과 밤을 그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는 아랫물은 한 컴퓨터의 os로 보고, 윗물을 인터넷에 연결된 세상으로 보기도 했다.
결국 창세기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이렇게 생각한다. 창세기를 두고 다양한 창조 가설이 존재하겠지만 (진화 과정을 창세기의 6일 창조로 설명하는 유신 진화론자의 책도 읽은 기억이 있다), "내 가설만 맞아"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성경이 무오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완전 명료하게 알려주신 게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만 명료하다.